러시아 피아니즘의 거장 엘리소 비르살라제(75)가 16일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첫 국내 독주회를 가졌습니다.
일단 비르살라제를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1915~1997), 블라디미르 호로비츠(1904~1989) 등과 함께 피아노를 상징하는 인물로 통합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여류 피아니스트로도 잘 알려져 있죠. 러시아 정부로부터 최고예술상을 수상했고, 러시아 피아니즘의 정통 후계자라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거물급 러시아 피아니스트에다가 국내 첫 내한공연이다 보니 클래식계에서 일찍부터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금호아트홀 390여석은 일찌감치 매진이 됐습니다. 금호아트홀 관계자는 “금호아트홀이 생긴 이후 정말 드물게 웨이팅리스트(대기 명단)가 만들어질 정도로 호응이 뜨거웠다”고 말했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티켓을 구한다는 글이 올라올 정도였습니다. 거의 피아니스트 조성진급 인기였습니다.
이날 공연에서는 피아니스트 백혜선, 김태형, 박종화가 찾는 등 클래식 관계자들이 대거 비르살라제의 공연을 보러 왔습니다. 그만큼 뜨거운 관심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공연이 시작되자 비르살라제는 별다른 동작 없이 바로 피아노 앞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 뒤 바로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이날 레퍼토리는 슈만의 아라베스크와 환상소곡집,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제13번,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소나타 제2번, 리스트의 헌정과 스페인 랩소디였습니다.
피아노를 치는 동작은 소박하다 할 정도로 거의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많은 연주자들이 피아노를 치면서 몸을 앞뒤로 왔다 갔다 하거나 의자에서 번쩍 일어나는 등의 격한 움직임이 많은데 비르살라제는 상체는 거의 그대로 있고, 팔과 함께 손목, 손가락만 피아노 위에서 춤을 췄습니다.
놀라운 것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강력한 타건이었습니다. 프로코피예프 작품 연주 때 눈을 감고 들어봤습니다. 마치 20대 남성 피아니스트가 연주하고 있는 듯 힘찬 연주가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날 앙코르를 세 곡 들려줬지만 앙코르는 생각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본 프로그램의 여운이 강력하게 남았습니다. 6개의 작품 모두 여운이 진하게 남아 앙코르는 거의 본 식사 뒤에 마시는 간단한 커피로 여겨졌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그 커피 또한 깔끔한 맛을 자랑했음은 물론입니다.
공연을 곱씹어보면서 드는 여러 생각들의 종착역은 한 곳이었습니다. “왜 이제야 온 것입니까? 또 와주세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