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과 달리 미술전시를 낯설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주제가 추상미술이라 하면 손사래부터 치는 분들이 있죠. 바로 그런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전시가 있어 소개합니다. 덕수궁에 들어가면 분수대 왼편으로 보이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유영국-절대와 자유’전입니다. 단언컨대, 미술에 대한 별다른 사전 지식이 없어도 전시 보는 내내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에너지와 울림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아직 못 보셨다면, 3월1일 폐막을 앞두고 있으니 주말나들이 코스로 ‘강추’ 합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화가 유영국(1916~2002)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전시인데요. 문자 그대로 추상화, 점 선 면 색 같은 기본 요소들로 완성된 그림들은 사실적이지 않으나 왠지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그 답이 경북 울진의 깊은 산골에서 태어난 화가의 말에 담겨 있습니다. “내 그림의 주제는 수십년 동안 한결같이 자연이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산’이었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추상의 언어로 재해석했다지만 우리네 가슴 깊이 각인된 이 땅의 산하에 매혹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겠지요,
모든 작품이 눈부십니다. 세련된 색채조합와 탄탄한 조형감각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절제된 구성, 큼직큼직한 캔버스와 만나 더욱 빛을 발합니다. 한 세기 전에 태어난 화가의 작품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작업 뒤에 감춰진 삶은 또 다른 감동의 원천입니다. 유영국은 1977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졌고 61세에 심장박동기를 달고 살기 시작했답니다. 이후 8차례 뇌출혈, 38번의 입원, 심장과 고관절 등 12번의 수술…. 2002년 8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야말로 극한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퇴원 즉시 곧장 화실로 돌아가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화가의 캔버스에서 생에 대한 긍정이 흘러넘친다는 점이 가장 놀랍습니다. 삶의 모진 횡포에 한껏 풀 죽은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를 건네는 듯 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 말이 딱 들어맞는 전시입니다. 당신의 주말이 비어있다면, 덕수궁에 한번 가보시길. 추신:
전시장 벽면에서 조각가 최종태 씨가 고인에게 바친 헌사 중 한 대목이 마음을 끌어당깁니다.
‘세월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어떤 시대고 간에 꼭 있을만한 사람을 반드시 심어놓고 지나갑니다. 그 시대 그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역사는 빠뜨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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