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유명한 얘기다. 6세 때 도끼를 갖고 놀다 아버지가 아끼는 벚꽃나무를 베었다. 누가 그랬느냐는 호통에 어린 워싱턴은 자기가 그랬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정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어린이용 ‘워싱턴 전기’마다 빠지지 않는 내용이지만 실은 전기 작가 파슨 윔스가 지어낸 얘기다. 1800년 그가 펴낸 최초의 워싱턴 전기엔 이 대목이 들어 있지 않다. 6년 뒤 그는 5쇄를 찍으면서 벚꽃나무 이야기를 집어넣어 ‘신화 창조’에 기여했다.
▷화가 김병종 씨는 “전후의 폐허 속에서 태어난 우리 세대를 키운 건 8할이 위인전이 아니었나 싶다”고 썼다. 어릴 적 잠에서 깨면 머리맡에 아버지가 놓아둔 위인전이 있었다 한다. 화가의 아버지는 위인전으로 무언의 가르침을 전한 것이다. 그 시절 웬만큼 사는 집이면 부모들이 사들인 한국과 세계 위인전집이 꽂혀 있었다. 출판사는 달라도 목록은 대동소이했다. 국내편은 이순신 세종대왕, 세계편은 링컨 에디슨 등이 단골 멤버였다.
▷대한민국이 먹고살 만해지면서 위인전 독서 열풍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 빈자리를 연예인 운동선수 사업가 등 우리 시대 유명 인사들의 성공스토리가 채우고 있다. 1982년 초중학생 대상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이 읽은 위인전 1∼5위는 이순신, 세종대왕, 에디슨, 퀴리 부인, 신사임당 순이었다. 반면 2016년 교보문고의 아동위인전 판매 순위는 1위 유재석, 3위 리오넬 메시, 4위 김연아, 6위 박지성, 7위 우사인 볼트, 10위 류현진이 차지했다. 이순신과 세종대왕은 각각 8위, 11위에 그쳤다.
▷전후 세대의 부모들이 위인전을 통해 올바른 인격 함양을 도모했다면 요즘은 진로 탐색 용도로 활용되는 것 같다. 위인전에서 어느 정도 과장과 미화는 피할 수 없다. 특히 생존 인물의 경우 남은 인생 동안 얼마든지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위험 요소가 있다. 논문 조작사건이 터지기 전 10여 종의 ‘황우석 위인전’이 출간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뒤엔 만화위인전이 나왔다. 책 제목은 ‘신뢰의 리더십 박근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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