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괴발개발과 개발새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1일 03시 00분


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한밤중 내리는 눈은 고양이 발걸음을 닮아 소리가 없다고 했던가. 사전에 화석처럼 남아 있는 ‘괴발디딤’(고양이가 발을 디디듯이 소리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는 짓)이란 낱말을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고양이 발걸음 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낱말이 겹쳐 떠오른다. ‘괴발개발’과 ‘개발새발’이다. 괴발개발은 ‘괴발(猫足)+개발(犬足)’ 구조로, ‘괴발’은 고양이의 발, ‘개발’은 개의 발이다. 천방지축 들이뛰는 고양이와 개의 발자국으로 어지럽혀진 모습에서 ‘글씨를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써놓은 모양’을 뜻하게 됐다. ‘괴’는 지금은 죽은말이 되다시피 했지만 고양이의 옛말이다.

한데 고양이와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개발새발을 떠올리는 건 왜일까. 이 낱말은 괴발개발과 같은 뜻으로 새로이 표준어가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과정이 재미있다. ‘괴’가 고양이의 옛말임을 잘 모르다 보니 언중은 괴발을 개발로 발음하고, 여기서 연상해 뒷말을 ‘쇠발’로 바꾼 ‘개발쇠발’을 입길에 올렸다. 또한 개발쇠발보다 발음하기가 더 편하다는 이유로 ‘개발새발’도 줄기차게 사용했다. 마침내 국립국어원은 언중의 말 씀씀이를 받아들여 이 중 개발새발을 복수 표준어로 삼았다.

글꼴은 비슷하지만 뜻이 전혀 다른 ‘쇠발개발’도 있다. 이는 ‘아주 더러운 발’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사방에 뇌물을 뿌리고 다니며 이권을 챙기는 사람에게 어울릴 법한 표현이다.

그러고 보니 동물의 이름과 합성돼 그 뜻이 바뀐 발 관련 낱말이 많다. 거미발 기러기발 까치발 노루발이 그렇다. 거미발은 노리개나 반지 등 장신구에 보석을 고정시키는 삐죽삐죽한 부분으로, 모양이 거미발처럼 생긴 데서 비유적인 의미를 지니게 됐다. 기러기발은 거문고나 가야금 따위 현악기의 줄을 고르는 기구를, 노루발은 노루발장도리 또는 재봉틀에서 바느질감을 눌러주는 부속을 뜻한다. 까치발은 발뒤꿈치를 든 모양새를 일컫는다.

고약한 발도 있는데,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는 속담 속 ‘오리발’이 그렇다. 이는 옳지 못한 일을 저질러 놓고 엉뚱한 수작으로 속여 넘기려 하는 일을 비유할 때 쓴다. 요즘 뉴스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표현이다. 국정을 농단한 어느 누구도 반성의 한마디 없이, 오리발만 내미니….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괴발개발#개발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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