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의 우리가 몰랐던 한식]‘한 상 차림’과 한정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2일 03시 00분


황광해 음식평론가
황광해 음식평론가
우리 밥상은 ‘한 상 차림’이다. 한 상에 모두 차려 놓고 골고루 섞어 먹는다. 우리는 한 상 차림 밥상을 받고 당황하지 않는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당황한다. 갑자기 여러 가지 반찬, 밥, 국이 한꺼번에 놓인 밥상을 받으면 당황한다. 어느 것부터,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묻는다. 한 상 차림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은 ‘일괄 타개’ 협상 방식을 좋아한다. 한 상에 모두 차려 놓고 한꺼번에 해치우는 것이다. 섞어 보니 손해와 이익이 균형을 이룬다.

한식은 평(平)의 음식이다. 밥과 국, 반찬을 골고루 섞어 평으로 먹는다. 먹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짜면 싱거운 것을 섞고, 매우면 심심한 것을 더한다. 평이다. 음과 양을 섞어 평을 향한다. 1795년 봄, 수원 화성에서 혜경궁 홍 씨의 환갑날 밥상이 마련되었다. 조선시대 가장 화려한 밥상. 음이 8기(器), 양이 8기, 평이었다. 한식에 보양식은 없다. 한식은 음양이 조화를 이룬 평의 음식이다.

한정식(韓定式)은 ‘한식+코스 요리’다. 한식이라는 몸에 서양식 코스를 입혔다. 한정식은 한식의 변종이다. 불과 40년. 한정식이 우리 음식이 될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외식업체의 고급 밥상은 한정식인데 가정의 밥상은 여전히 한 상 차림이다. 바탕이 한 상 차림인 나라에서 뿌리 없는 코스 요리가 얼마나 버틸까. 음식의 생명력은 핏속에 DNA로 새겨진다. 정권 차원에서 진행하는 한식 세계화는 한정식이다. 수백 년 이어 온 한 상 차림 밥상이 해외 행사 몇 번으로 한정식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한정식은 슬프다. 억지 춘향이다. 죽과 의미 없는 샐러드, 여러 요리를 쭉 나열하고 마지막에 한 상 차림 백반을 내놓는다. 그 이전의 화려한 음식은 무엇일까. 술안주다. 음식 값을 높이기 위한 쇼다. ‘한식 디저트’는 코미디다. 억지 춘향으로 단맛을 내놓는다. 지나친 단맛으로 평준화하는 사회는 후진적이다. 코스 음식, 서양식 코스 요리는 마지막의 단맛 디저트로 앞의 모든 음식을 부정한다. 숭늉의 구수함이 차라리 고급스럽다.

한 상 차림 한식을 ‘기생집 술상’이라고 폄훼하는 이도 있다. 시작은 ‘궁중 요리’다. 존재하지도 않는 궁중의 요리를 ‘명월관’(1903년 설립)의 안순환이 팔았다. 밥집이 아니라 술집이었다. 궁중에서만 먹었던, 궁중에서만 사용한 조리 기법으로 만든 궁중 요리는 하나도 없다. 고종이 커피를 마셨다고 커피가 궁중 음식은 아니다. 당뇨 환자로 추정되는 고종이 배가 많이 들어간, 다디단 냉면을 먹었다고 고종의 냉면이 궁중 냉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안순환이 내놓았던 명월관의 궁중 요리는 한 상 차림이었다. 화려한 한 상 차림이 기생집 술상이라면 그 음식들을 하나씩 흩어 코스대로 내놓아도 마찬가지, 술상의 안주일 뿐이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을 만났다. 노학자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음식에 대해서도 명쾌했다.

“한식은 한 상 차림이다.”

밥과 국, 나물 반찬과 각종 젓갈, 생선, 고기가 한 밥상에 자리한다. 조촐한 밥상일지라도 먹는 순서에 따라 숱한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한 상 차림 한식은 먹는 이가 고르고, 섞는다. 한 상 차림의 수저는 한 벌이다. 숟가락 하나로 밥도 뜨고 국도 뜬다. 한 벌의 젓가락은 수많은 반찬을 오간다. 밥과 국, 반찬이 뒤섞인다.

섞지 않는 서양 코스 요리는 8벌의 포크와 나이프를 내놓기도 한다. 서양 음식은 단절이다. 앞 음식의 찌꺼기가 묻은 나이프, 포크는 사라진다. 새로운 음식에는 새로운 나이프, 포크가 필요하다. 마지막 디저트는 단맛으로 모든 것을 뒤덮는다. 식사 후 디저트의 단맛만 기억한다. 서양 음식은 섞임, 충돌, 융합을 싫어한다. 앞의 음식은 뒤를 짐작하지 못하고 뒤의 음식은 앞을 알지 못한다.

한식의 바탕은 한 상 차림이다. 한 상 차림의 여러 요소가 입안에서 충돌, 화합, 융합한다. 한 상 차림이 한식의 기본인 까닭이다.
 
황광해 음식평론가
#한 상 차림#한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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