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李) 씨는 부유한 상인의 아내로 몹시 예뻤다. 동업하던 남자가 이 씨를 좋아하여 그 남편을 여행길에서 죽였다. 장례를 잘 치러 주고 돌아와 이 씨에게 남편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속이고 남편의 재물을 모두 돌려주었는데 하나도 빼돌린 것이 없었다. 이 씨가 상기(喪期)를 마치자 그는 이 씨에게 자신과 남편의 의리를 말하면서 혼인을 청하였다. 이 씨는 마침내 허락하고는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어느 날 홍수가 났는데 남편이 물거품을 보고 웃었다. 부인이 이유를 묻자 남편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당신의 전남편이 물에 빠진 것은 내가 한 짓이오. 물에 빠졌다가 다시 나왔을 때 내가 상앗대로 찔렀는데, 찌른 곳에서 바로 오늘 본 것처럼 물거품이 일었소.”
부인은 즉시 관가로 달려가 사실을 알려 마침내 옥사(獄事)를 바로잡았다. 복수를 마치자 “내가 자색 때문에 두 남편을 죽였으니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하고는, 두 아들도 원수의 아들이라 하여 묶어서 강물에 던진 뒤 자신도 따라서 죽었다.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배신과 거짓, 복수 등이 뒤엉켜 몹시도 혼란스럽고 잔인한 결말에 이르렀습니다. 성호 이익(星湖 李瀷·1681∼1763) 선생은 ‘세 가지 의심스러운 일에 대해 논한 글(三疑論)’에서 부인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을까를 논합니다.
의리가 뒤엉킨 가운데에도 반드시 하나의 곧음은 있는 법이니, 의리가 통하는 것을 잘 관찰한다면 애초에 제대로 행동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義理盤錯 必有一直 觀乎會通 未始有不可行也). 부인이 개가한 잘못은 작고 복수한 잘못은 크다. 원수에게 시집간 것은 비록 잘못된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서 후회를 할 수 없게 된 지가 이미 오래되었는데 이미 의리가 끊어진 사람을 위해 정절을 세우고 현재의 남편에게는 악행을 저질렀으니 그 잘잘못이 어떠하겠는가. 부인의 선악은 전남편과의 의리를 끊었는지 끊지 않았는지에 따라 판단해야 하고, 이에 따라 원수를 갚아야 하는지 갚아서는 안 되는지도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생의 결론이 정답인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어디까지 올라가 바로잡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세상일이 언제나 명확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없이 마주치는 삶의 갈림길에서 여전히 세상살이는 어렵고 또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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