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의 연극인 열전] 연출가 고선웅, 정점에 섰지만 진화는 계속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2일 15시 15분


요즘 ‘연극계의 대세’라는 고선웅 연출가는 “그런 평가를 별로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하기 전에 청계천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기자의 포즈 요구에 쑥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며 ‘저런 사람이 어떻게 배우들에게는 연기를 요구하지’하는 짓궂은 
의문이 들었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요즘 ‘연극계의 대세’라는 고선웅 연출가는 “그런 평가를 별로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하기 전에 청계천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기자의 포즈 요구에 쑥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며 ‘저런 사람이 어떻게 배우들에게는 연기를 요구하지’하는 짓궂은 의문이 들었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첫 화살부터 빗나갔다.

“연극, 창극, 뮤지컬, 오페라에다 극본, 각색, 연출 등 장르와 역할을 넘나들며 너무 많은 작품에 손을 대고 있는 게 아니냐”는 힐난성 질문에 그는 “계산한 것은 아니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살짝 변명을 기대했는데, 꾸지람 들을 일은 아니라는 투다.

그는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 슬쩍 기댔다. 소설은 척화파인 김상헌의 형 김상용의 편지에서 이런 구절을 소개한다. “참혹하여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다만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다.” 즉 본인도 그때그때 닥쳐오는 일을 열심히 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나로서는 물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언뜻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를 떠올리게 한다.

단, 김상용의 편지 중 ‘참혹하여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라는 구절은 그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그는 ‘참혹한 마음으로’ 장르와 역할을 넘나드는 게 아니라 분명, “남들은 경우가 없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런 게 너무 재미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는 누구인가. 요즘 연극계의 대세라는 고선웅 연출가(49)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일보사에서 그를 만났다.

빗나간 화살을 주워 다시 쐈다. 그래도 뭔가 더 좋아하는 분야가 있을 것 아닌가. 그는 화살을 다시 튕겨냈다. “글을 쓸 때는 주인공으로 빙의를 하고, 연출할 때는 행복하다. 죽지 않고 살아 있구나, 하는 느낌이다.” 연극을 만드는 프로세스 전체가 다 마음에 든다는 의미다.

언뜻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고 오해할 만한 이 남자가 왜 ‘대세’인가. 그의 각색·연출로 가장 최근에 무대에 올린 작품이 국립극단의 ‘조씨고아(趙氏孤兒), 복수의 씨앗’이다(1월 18일~2월 12일. 명동예술극장). 2015년 공연 때 호평을 받은 작품을 다시 올린 것이다. 이번에 만든 팸플릿을 보니 그가 연극, 창극, 뮤지컬, 오페라에서 연출, 작·연출, 각색·연출, 구성·연출, 극본·가사·연출, 윤색·가사 등으로 무대에 올린 작품이 19개나 된다. ‘외 다수’라고 하니 그밖에도 많다는 뜻인데, 동아일보 데이터베이스에서 그와 관계가 있는 9개 작품을 더 찾아냈다(그래도 빠진 것이 있을 것이다).

작품 수도 적지 않지만 더 ‘신기한’ 것은 2001,2006,2008년 상을 받더니, 2011년부터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상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팸플릿에 소개한 상만 15개다. 2015년에는 앞서의 ‘조씨고아’로 동아연극상 연출상, 대한민국연극대상 연출상, 아름다운 예술인상, 한국연극연출가협회 올해의 연출가상 등 굵직한 상을 4개나 몰아 받았다. 수년째 연극판의 상이란 상은 모두 휩쓸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만약 ‘연극쟁이’가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감독이었다면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 카리스마 감독이 됐을 게 틀림없다(그런데 그는 부와는 거리가 멀다, 고 한다. 명예는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별도로 치더라도).

무엇이 그의 연극을 상찬하도록 만드는가. 기자는 그의 스타일과 지향을 몇 개의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기자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이미 언급했듯 그는 기존의 장르와 역할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는 최근의 사회변화와 묘하게 맥이 닿아 있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쌀을 재배해서(1차) 도정과 포장을 하고(2차) 온라인을 통해 직접 판매하면(3차) 경쟁력이 강한 6차 산업(1+2+3차)이 된다고 한다. 그가 직접 쓰고, 각색하고, 연출하는 것과 비슷하다.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 use)’라는 말도 한 가지 소스나 스토리를 연극으로, 창극으로, 뮤지컬 등으로 달리 쓰는 게 효율적이라는 뜻인데 그의 성정과 맞아 떨어진다. 그가 의식 하든 안 하든 그는 장르와 역할의 융합에 앞서 가고 있는 ‘멀티 태스크’ 연출가인 셈이다.

단, 이런 일은 의욕만 갖고는 안 되고 결과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는 그런 과정을 즐기고 있고, 재능도 있는 것 같다. 이는 그의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87년 중앙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해 곧바로 학내 연극단체인 ‘영죽무대’에 들어갔다. “여러 학과의 선배들이 모인 거기에서 모든 것을 다 배웠다. 연극, 영화, 희곡 등등. 꼭 만물상 같았다”(워털루 전쟁의 승리는 전장이 아니라 이튼 교정에서 나왔다는 영국 웰링턴 장군의 말과 닮았다). 그는 졸업 후 94년에 들어간 광고회사에서 부적응으로 곧바로 잘리고, 95년에 다시 광고회사에 취업해 99년에 그만뒀다(회사를 그만 둘 때 자신이 일하던 63빌딩이 마치 성냥갑처럼 보였다는 어느 인터뷰의 표현이 마음에 든다). 그 해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우울한 풍경 속의 여자’가 당선되면서 전업 연극인으로 들어섰다. 그러니 나름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나 할까, 아님 준비된 연극인이었다고나 할까.



다음으로 그는 관객과의 소통을 중시한다. 연극은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쉽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으로 4년간 일한 적이 있다. 자만, 교만, 도그마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반성하고 리셋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연극은 쉬운 연극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극단을 이끌고 경기도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평범한 도민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내가 만들고 싶은 연극이 아니라 관객이 보고 싶은 연극을 만들어야 한다는 걸 실감했다는 뜻인데, 그 기조는 지금도 살아있다. 그러니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은 그의 연극인생에서 처음 찾아온 터닝 포인트인 셈이다.

그는 연극의 놀이성도 강조한다.

“나는 지금 연극을 하고 있다, 나는 지금 연극을 보고 있다는 의식이 필요하다. 무대 위에서 완전히 실감나는 연극을 하는 것이 꼭 좋은 게 아니다. 오히려 연극을 보며 무한히 상상하도록 만드는 게 필요하다.”

그는 연극은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의 하나라는 점을 일깨우고 싶은 듯 하다. 여기서 그는 동화(同化)의 반대 개념으로서 이화(異化)라는 말을 꺼냈다.

“A와 B가 대화를 하고 있다고 치자. A가 엄숙하게 말하면 B도 꼭 엄숙해야 하나. 어쩌면 B는 그 때 화장실에 가고 싶을 수도 있고, 배가 고플 수도 있고, 등이 가려울 수도 있다. 그게 사람이다. 이화가 있어야 동화도 있다.”

엄숙한 장면에서 엄숙에 동화되지 않고 ‘인간답게 행동하면’ 웃음이 터지는데, 그는 그런 연출을 즐긴다. 나는 이게 ‘고선웅표 연극’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는 “쥐려면 펴야 한다. 너무 정색을 하고 만들면 관객은 피곤하다. 예를 들어 ‘나는 조선의 독립을 원한다’고 하는 것보다 ‘지금 이대로는 목이 답답하다’고 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렇게 해석하고 연출하는 게 내 버릇이고 내 취향이다.”

이화가 홀로 폭주를 하면 어떻게 하나. “조연출도 있고, 스탭도 있다. 너무 나갔다, 너무 풀렸다고 지적하면 그대로 수용한다. 이화는 작전이 아니다. 내공을 갖고 자연스럽게 써야 효과가 나온다.”

덧붙이자면 그는 ‘대사’를 의사나 의미전달의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그 자체의 리듬감이나 호흡, 전달방법 등에도 신경을 쓰는 연출가다. 대사를 수단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하나의 의미 기호로 승격시킨 것이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랩으로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시도는 극작과 각색 경험이 많은데 따른 자연스런 귀결이자, 놀이 도구로서의 언어의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평단의 극찬을 받고 있는 ‘조씨고아’를 통해 그의 연극관과 연출관의 일단을 살펴볼 수 있다. ‘조씨고아’는 12세기 중국 원나라 때 기군상이라는 사람이 쓴 ‘20년을 준비한 가문 복수극’으로 오수경 한양대 교수가 번역하고, 고선웅 씨가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우선 이 시대에 800년 전에 쓴 가문의 복수극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어떤 답을 갖고 있을까. 나도 이 연극을 보는 내내 ‘참으로 매력 없는(그래서 힘든) 주제를 갖고 연극을 만들었구나’하는 걱정을 했다.

“요즘도 IS(이슬람국가)의 참수와 난민들의 참상이 전해지고 있다. 그런 것들이 복수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피해자들의 마음속에 울화 같은 게 있지 않겠나. 복수하고 싶을 것이다. 복수는 필요하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납득하기 힘들다. 그와 이 연극이 하고 싶은 말은 그 다음에 있다. “복수를 했다고 반드시 후련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 대목이 ‘복수’에 대한 그의 현대적 해석이다.

고선웅 씨가 각색과 연출을 맡아 화제를 부른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의 한 장면. 자신의 아기를 남의 아기라고 속여 죽게 
만들고, 남의 아기를 키워 복수를 도와주기로 한 남편과 이에 격하게 반발하는 아내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국립극단 제공
고선웅 씨가 각색과 연출을 맡아 화제를 부른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의 한 장면. 자신의 아기를 남의 아기라고 속여 죽게 만들고, 남의 아기를 키워 복수를 도와주기로 한 남편과 이에 격하게 반발하는 아내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국립극단 제공


고전을 지금의 무대로 가져오는 ‘고전의 동시대화’ 과정에서는 ‘변용’이 필수적이다. 다만 그때도 스토리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서사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동시대인의 욕구까지 충족시킬 수 있는 예술성과 독창성도 확보해야 한다.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고선웅은 원작에 충실한 정공법을 택하면서도 비극 속에 놀이를 버무림으로써 관객의 텐션과 지지를 이끌어낸 것 같다(물론 탁월한 연기 앙상블과 독창적인 무대 장치 등 다른 요인도 많다).

‘조씨고아’는 지난해 중국 베이징 국가화극원 대극장에서 공연돼 현지 관객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때의 공연을 보고 저우젠썬(周健森)이라는 평론가가 쓴 연극평은 원작의 무대인 중국에서도 ‘복수’라는 테마의 현대화에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또 고선웅의 연출, 즉 비극 속에 놀이를 버무린 것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도 들어 있다(팸플릿에서 인용. 사족이지만, 저우젠썬의 연극평은 해외극단의 공연이라는 특수성을 염두에 두고 꼭 언급해야 할 문제점을 어렵지 않은 단어로 품격있게 지적하고 있다. 연극평의 정석을 보는 것 같다).
“희극의 형식으로 대비극(大悲劇)을 풀어낸 것은 모험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다행히 이 연극의 창작자들은 즐거움과 슬픔이라는 양극단의 정서 사이에서 아주 훌륭한 결합점을 찾아냈다. 그들은 해학적 기법으로 어떻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지를 알고 있었고, 동시에 신성한 사건 앞에서 반드시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 함 역시 알고 있었다.”

고선웅은 2005년 ‘극공작소 마방진’이라는 극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는 다른 인터뷰에서 “한마디로 제가 원하는 연극을 만들고 싶어서 극단을 창단했다”고 했다. 자신의 연극철학이나 연출 메소드를 일일이 설명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척하면 척 알아주는 단원들을 데리고 연극을 하고 싶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나는 작은 의문을 제기했다. 연출가의 ‘그립’이 너무 강하면 단원들의 자율성이나 개성이 죽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더욱이 그는 배우의 개성을 살려주려고 노력하고 있고, 가능하면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한다는 말도 했기 때문에, 두 지향 사이에서 모순을 느꼈기 때문이다.

“연극은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르다. 영화나 드라마는 한번 잘 찍으면 ‘오케이!’하고 끝나지만 연극은 내일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야 한다. 작가에게 그 나름의 문체가 있듯이 연출가에도 ‘극체(劇體)’라는 것이 있으며, 이것이 없으면 연극은 산으로 간다. 배우들의 개성이 얼마나 강하냐.”

‘극체’라는 단어는 없다. 그가 만든 말이다. 더 따져 묻지는 않았지만, 그는 연출가의 ‘그립’을 더 중시하면서도 배우의 개성과 융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연극으로 입신양명을 하고 싶은 뜻은 없다, 나만을 위한 연극은 하고 싶지 않다는 취지의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리고 꽤 낙천적이다. 심장이 움직이면 한다나 뭐라나. 어쩌면 그런 태도가 자칫 충동할 것 같은 그와 배우 사이에서 스펀지 역할을 해주는지도 모르겠다. 극단은 열림을 지향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폐쇄적인 조직이다. 이 문제는 국외자가 이러쿵저러쿵 얘기할 것이 아니라 연출가와 배우들이 신뢰로 풀어가야 할 숙제이며, 그게 ‘극단의 컬러’일 것이다.

고선웅은 요즘 ‘사랑’을 말한다. 당신의 연극적 화두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면 나오는 대답이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고, 경제적으로 실패도 해보고, 이런저런 고통을 맛보며 문득 사랑을 배웠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 (마음의) 품이 넓어지면서 좋은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사랑 말고 행복도 있다. 행복하려면 의지가 필요하다. 행복은 그냥 오는 게 아니다. 긍정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부정을 선택하면 답이 없다. 사랑 안에 모든 게 다 들어 있다. 그만큼 흔하다. 그렇지만 사랑만한 것도 없다.”

그의 말은 대략 ‘사랑’ ‘긍정’ ‘의지’라는 키워드를 갖고 보편적이면서 독창적인 연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주 친근한 단어들이다. 그의 연극이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연극은 힘든 작업이자 직업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지하의 소극장으로 우겨 들어가는 게, 낭만도 있지만, 우울도 있다. 연극인으로 살아가면 경제적으로 인풋과 아웃풋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국가에서 지원을 하는 게 아니겠나. 영화나 드라마에는 있는데, 연극에는 없는 것? 제작자나 투자자다. 연극판은 아직도 ‘열정 페이’로 굴러간다. 연극판에서는 서로 어떻게 먹고 사는지를 묻지 않는다. 매너가 아니다. 가슴이 짠하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더라. 대기업 총수 딸이 바이올린이 아니라 연극을 좋아했더라면 연극판도 달라졌을 거라고…”

고선웅은 세속적인 의미에서 성공한 연출가다. 그렇지만 그가 만들어 10년이 더 된 극단조차 적자다. 아직 자립은 못했고, 자립할 의지만 있다며 웃는다. 예전에는 연극 한편 만드는데 3000~4000만원이 들었는데, 요즘은 1억원이 넘는다. 그래서 단원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이 크다고 한다.

‘조씨고아’의 마지막 장면. 20년간 준비해온 복수에 성공한 주인공(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그동안 숨진 사람들을 상상 속에서 
만나는 장면이다. 고선웅 연출가는 이 장면에서 주인공이 아내의 용서를 받지 못함으로써 “복수를 한다고 반드시 통쾌한 것은 
아니다”라는, 고전의 복수 테마에 충실하면서도 결말은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국립극단 제공
‘조씨고아’의 마지막 장면. 20년간 준비해온 복수에 성공한 주인공(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그동안 숨진 사람들을 상상 속에서 만나는 장면이다. 고선웅 연출가는 이 장면에서 주인공이 아내의 용서를 받지 못함으로써 “복수를 한다고 반드시 통쾌한 것은 아니다”라는, 고전의 복수 테마에 충실하면서도 결말은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국립극단 제공


그렇다면 굳이 이 시대에 연극이 필요한가.

“질문을 바꿔 ‘그럼 연극이 없으면 좋겠느냐’고 묻고 싶다. 국가에서는 계륵처럼 생각할지 모르지만 연극은 나름의 존재가치가 있다. 연극이 없으면 영화나 드라마도 없었다. 지금도 연극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연구를 하며, 사유와 상상을 자극한다.”

그는 비록 현실은 연극이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푸대접을 받고 있지만, 추구하는 이상만큼은 영화나 드라마를 리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유와 상상’이라거나 ‘고매한 그 무엇’이라는 표현이 그런 생각의 편린이다. 나는 종종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이 만년필을 사는 것이라면, 연극을 보는 것은 그 만년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흔한 만년필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경험은 연극만이 줄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성공’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한다.

“40대는 이런 걸 저런 걸 하려고 했다면, 지금은 할 일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인연을 잘 쳐다보고, 마음의 사(邪)가 없이 일하려 한다. 인생은 작전대로는 살수 없다. 살아보니 그게 인생 아니겠는가.”

그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5·18광주민주항쟁을 다룬 ‘푸르른 날에’를 연출한 것 때문으로 추측한다. “‘푸르른 날에’는 그런(이념으로 재단해야 할) 작품이 아니다. 연극이 정치 얘기는 안하는 게 좋다.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그는 평창 패럴림픽 개폐회식의 총연출자로도 바쁘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을 그런 자리에 앉힌 걸 보면 그의 해명이 맞는 것도 같다. 요즘 관계자들과 회의를 하며 식의 골격을 다듬고 있다고 한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다음에는 2020년 도쿄 여름올림픽,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기다리고 있다. 드문 일이다. 한중일 3국은 경제분야의 상호의존도는 점점 높아지는데 외교 안보분야는 거꾸로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이를 ‘아시아 패러독스’라고 한다. 이 패러독스를 완화할 ‘진통제’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아온 게 문화교류다. 국가적 대형행사의 개폐회식은 곧 그 나라 문화 역량의 총합이다. 고선웅 연출가에게 한중일 3국과 경쟁하지 말고, 한국적인 그 무엇으로 인류보편의 정서를 아우를 수 있는 개폐회식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이유다.

그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극과 극은 통한다. 우물 안에만 살면 우물 밖을 볼 수 없다고 하는데, 우물 안에서 아주 오래 살면 우물 밖이 보인다”고 했다. 나는 그걸 한 우물을 오래 파다보면 세상만사에 두루 통하는 문리(文理)가 트인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러면서 그가 연극이라는 우물 안에 계속 남아있길 희망했다.

그를 인터뷰를 하며 느낀 소감 하나를 부기할까 한다. 물론 매우 주관적인 소감이다. 나는 그의 연극 인생에서 또 한번의 터닝 포인트가 올 것이라고 본다. 기존의 연극관이나 연출 메소드를 버리진 않겠지만 앞으로 자신의 연극에 ‘깊이’를 더하고 싶어 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아직 젊은데다, 예술가란 원래 자신을 넘어서길 원하는 존재이고, 그가 다음에 들를 곳은 지하실이 아니라 어느 빌딩의 옥상쯤이니까 말이다. 어쩜 예상보다는 희망이라는 말이 적확할지 모르겠다. 예상이든, 희망이든 그런 날이 온다면 한국 연극은 조금 더 윤택해질 게 틀림없다.

(예술가는 상보다는 작품으로 말한다. 기사의 완결성을 위해 고선웅의 주요 작품을 소개한다. ▽연극 -작·연출 ‘들소의 달’ ‘강철왕’ ‘마리화나’ -각색·연출 ‘탈출:날숨의 시간’ ‘곰의 아내’ ‘홍도’ ‘리어외전’ ‘푸르른 날에’ ‘칼로막베스’ ‘조씨고아’ -구성·연출 ‘한국인의 초상’ -연출 ‘산허구리’ ‘뜨거운 바다’ 외 다수 ▽창극 -각색·연출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뮤지컬 -극본·가사·연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극본·연출 ‘아리랑’ -윤색·가사 ‘원스’ -작 ‘남한산성’ ▽오페라 -연출 ‘맥베드’ ※1월에 제작한 국립극단 ‘조씨고아’ 팸플릿에서/이밖에 ‘우울한 풍경 속의 여자’ ‘떠도는 자, 정여립’ ‘팔인’ ‘삼도봉美스토리’ ‘락희맨쇼’ ‘늙어가는 기술’ ‘부활’ ‘천적공존기’ ‘외톨이들’ ‘모래 여자’ 등을 쓰거나 각색하거나 연출했다.)

심규선 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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