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저녁이 되면 경사 높은 좁은 길을 걸어 쉼터를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가던 길에 푸른색 소주 한 병과 게맛살 하나를 들고 집에 들어가 하루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옥탑방에서 룸메이트와 그렇게 하루 이틀 보내고 나니 옥상 절반이 병들로 가득 찼다. 와, 언제 이런 걸 해볼 수 있을까…. 한심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고, 그 병들을 모아 슈퍼에 되팔아 다시 푸른색 소주 몇 병을 얻어 오기도 했다. 그때는 병을 팔아 생필품을 몇 개 바꿔 오기도 했다. 월급날이면 소소하지만 그 나름대로 ‘지름신’이 강림한 파티가 열린다. 집 앞 조그마한 양념족발집, 그곳에서 밤새 젊은 삶에 대한 넋두리와 앞으로 다가올 내 삶에 대한 기대와 꿈들을 이야기했다.
벌써 10여 년 전 일이지만 가끔 생각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참 자유로웠던 것 같기도 하고 참 퍽퍽했던 생활이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살아가기란 참 외롭고 힘든 일이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내 발 디딜 곳을 만들었다는 것에는 내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고 싶기도 하다.
지금은 고향인 이곳에 와서 ‘오너 셰프’란 소리도 듣고 사장님이란 소리도 듣고 나 나름대로 만족한 삶을 살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꼭 서울에 가서 성공을 해야 하는 것일까.
길은 찾는 자에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항상 준비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나에게 맞는 일들을 찾다 보면 그 방향으로 한걸음 다가갈 수 있도록 길이 보이지 않을까. 중심 도시에는 사람도 많고 일거리도 많지만 그곳이 날 반겨주는 일들은 드물기 마련이다. 사람이 많으니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있는 이곳, 전주. 이른바 지방엔 일거리가 없어 먹고살기가 힘들어 수도권에서 퍽퍽한 삶을 택한 이들이 많다. 무엇이 그들을 그곳으로 가게끔 만들었을까. 약간의 여유로움과 약간의 욕심을 버리면 정겨운 이곳에서 부모 형제와 같이하며 훈훈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
텔레비전에 가끔 소자본으로 성공(?)한 청년들의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젊은 패기로, 열정적인 꿈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온 이야기들. 약간의 MSG를 첨가했겠지만 많은 이들이 그것들을 보면서 먹고살기 위한 꿈이 아닌,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한 꿈을 꾸며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열정 페이’를 주며 몇 달 후, 몇 년 후엔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리라 하고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스스로에게 희망을 주고 할 수 있다고 자기 최면을 건다면 수도권이 아니더라도 난 이미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이런 곳이어서 안 된다는 핑계 아닌 핑계와 먹고살 게 없어서 안 된다는 고정관념으로는 어디에서든, 어떤 일을 하든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다. 가끔은 과하게 낙천적인 모습이 필요할 때도 있지 않을까.
―김은홍
※필자(43)는 서울에서 일하다가 전북 전주로 옮겨 볶음요리 전문점인 더플라잉팬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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