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의 호모부커스]경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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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 출판평론가
표정훈 출판평론가
조선의 선비들은 유교 경서를 외우기 위해 경서통(經書筒)을 사용했다.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 경서 구절 몇 글자를 적은 막대기 수백 개를 담은 통이다. 막대기 하나를 뽑은 뒤 적힌 글자를 단서로 어떤 경서의 어느 부분인지 말하고, 이어질 전체 문장을 외우며 뜻을 풀이한다. 과거(科擧) 수험용 교보재였던 셈이다.

스탕달 소설 ‘적과 흑’의 주인공 쥘리앵 소렐은 라틴어 성서를 통째로 암기함으로써 성직자로 입신하여 상류 사회로 들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이슬람권에서는 6236개 절, 8만여 단어로 이뤄진 꾸란을 암송하는 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대회에 나갈 정도가 되려면 적어도 3년 이상 하루 여러 시간 외우고 또 외워야 한다.

경(經)은 피륙이나 그물을 짤 때 세로 방향으로 걸어 놓는 실, 즉 날줄이다. 씨줄이 들고나는 동안 날줄이 자리를 잘 잡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경은 불변하는 근본적인 가르침이나 보편적 진리를 뜻한다. 경경위사(經經緯史)라 하였으니, 경서의 보편적 진리를 기본 틀로 삼고 여기에 변화하는 역사와 세계를 엮어 탐구한다는 뜻이다.

경서라고 하면 유교 경서부터 떠올리곤 하지만 불교의 방대한 불경과 도교의 도장(道藏), 기독교 성서, 이슬람의 꾸란, 조로아스터교의 아베스타, 인도 브라만교의 베다 등이 모두 경서다. 신(神)이나 성인만이 경을 창작할 수 있고 그 밖에 다른 사람들은 작(作)이 아니라 술(述), 즉 해설만 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성인이 지은 경과 현인이 해설한 전을 뜻하는 성경현전(聖經賢傳)을 줄여 경전이라 했다.

공자는 자신이 술이부작(述而不作)한다고 말했지만, 성인 반열에 오르면서부터는 그의 언행록 ‘논어’도 경서가 되었다. 이렇게 경서도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종교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중세 서양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학문적 경서였다. 유클리드의 ‘원론(原論)’,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는 기하학, 천문학의 경서였다.

현대는 경서를 잃어버린 시대다. 세속적 합리성이 종교적 경건함을 압도한다. 성숙에 이르는 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빠른 성과를 낳는 효율을 추구한다. 보편적인 진리 같은 건 없다고 여긴다. 몇 안 되는 경서에 생각이 구속되던 옛날보다 자유롭고 다원적인 독서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날줄 없이 씨줄만으로 지은 생각의 그물은 위태롭다. 지엽적인 정보 조각과 지식 무더기는 이미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유교 경서#적과 흑#술이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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