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진실에 귀 기울일때 트라우마 치료의 길 열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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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가 최초로 세상의 무대에 등장한 이후로 항상 그래왔듯이, 사회가 피해자의 진실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었을 때에야 트라우마는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트라우마의 제국’(디디에 파생, 리샤르 레스만 지음·바다출판사·2016년)

트라우마라는 단어는 한국 사회에서도 이미 너무 보편적으로 사용돼서 상투적으로 들리기 시작한 단어다. 하지만 트라우마 증상의 의학적 진단명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병명은 1980년 미국에서 생긴 것으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사건, 사고 피해자들의 정신적 충격이 처음부터 돌봄과 치료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PTSD의 명칭, ‘트라우마 신경증’을 앓던 군인들은 겁쟁이라는 비난과 함께 전기충격 같은 비인도적 치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참상을 겪으며 피해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고 맞서는 증인의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이후 베트남전 참전 군인의 권리 주장과 성폭력 피해자들의 경험을 고백함으로써 남성 중심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페미니즘 운동을 거치며 ‘트라우마 신경증’은 PTSD로 재정의된다. 피해자의 나약함이 아니라 사건, 사고 그 자체가 증상을 낳는다는 새로운 인식이 정립된 것이다.

2001년 9·11테러는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일상용어로 확장되는 계기가 됐다. 피해 당사자는 물론이고 현장에 있었던 관계자, 심지어는 TV로 해당 사건을 지켜본 다수 대중까지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알려졌다.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객관적 용어가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개념이라는 점을 인식하면 단어의 이면 역시 들여다볼 수 있다. 누군가는 피해자로 호명되고 위로와 돌봄의 대상이 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피해자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어떤 사건은 트라우마의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어떤 사건은 지목되지 못한 채 잊혀진다.

한국 사회 역시 그동안 숱한 참사를 겪어 왔다. 특히 4월이 되면, 다시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트라우마라는 단어의 형성 과정과 특성을 조망한 이 책을 읽으면 그 같은 참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확보할 수 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트라우마의 제국#디디에 파생#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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