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학년이 시작될 때면 묘한 설렘에 가슴이 부풀었다. 새 교과서의 겉장이 닳을까 봐 달력 종이 등으로 정성껏 싸곤 했다. 지금은 추억으로나마 남아 있을는지. 그런데 책 겉장을 싸는 행위나 그런 종이를 가리키는 말이 있으리라곤 짐작조차 못 했다.
‘가의(加衣), 책가위, 책가의(冊加衣)’ 등이 그것들이다. 하나같이 ‘책의 겉장이 상하지 않게 종이, 비닐, 헝겊 따위로 덧씌우는 일. 또는 그런 물건’을 가리킨다.
가의(加衣)는 한자 뜻 그대로 ‘옷을 입히다’, 책가의는 ‘책에다 옷을 입힌다’는 얘기니 그 쓰임새가 쉽게 와 닿는다. 그렇다면 책가위는?
박일환 씨는 ‘잠든 우리말을 깨우다’에서 책가위는 책가의가 변해서 된 말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책가위를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그런 행위를 나타내는 말 자체가 잊히고 있다.
노란 단풍잎을 연상케 하는 ‘책갈피’도 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물건이다. 한데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낱말을 처음엔 ‘책장과 책장의 사이’를 가리키는 말로만 보았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다가 어딘가 다녀와야 할 때는 책갈피를 끼워놓고 가면 된다’에서의 책갈피는 잘못 사용한 것이며, 이때는 서표(書標)를 써야 옳다는 글도 있었다. 지금은 어떨까.
서표를 써야 한다는 주장은 물론 옳다. 이와 함께 ‘읽던 부분을 책갈피로 표시했다’는 언중의 말 씀씀이 또한 옳다. 국어원은 책갈피에 ‘읽던 곳이나 필요한 곳을 찾기 쉽도록 책의 낱장 사이에 끼워 두는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란 뜻풀이를 덧붙여 놓았다.
‘찌’와 ‘찌지’도 있다. 찌 하면 미끼를 매다는 데 쓰는 낚시찌를 떠올리겠지만 ‘특별히 기억할 만한 것을 표하기 위해 글을 써서 붙이는 좁은 종이쪽’을 뜻한다. 국어원이 ‘붙임쪽지’로 순화한 ‘포스트잇(post-it)’에 해당하는 게 바로 ‘찌’인 셈이다.
‘보람’도 재미있는 낱말이다. 많은 이가 ‘어떤 일을 한 뒤에 얻어지는 좋은 결과나 만족감’이란 의미로 사용하지만 ‘다른 물건과 구별하기 위해 표시를 해둔다’는 뜻도 있다. ‘보람줄’은 책 따위에 표지를 하도록 박아 넣은 줄이다. 요즘은 갈피끈이나 가름끈을 입길에 올리는 이도 많다.
도시의 거리를 수놓고 있는 간판(看板)을 뜻하는 우리말을 아시는지. ‘보람판’이다. 한데 입길에서 멀어져버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