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이나 카페에 가면 테이블에 꼭 성냥이 놓여 있던 시절이 있었다. 애연가들에겐 너무 당연했고, 젊은 연인들은 그곳에서 성냥개비 탑쌓기를 하면서 사랑을 키웠다. 쌓다가 무너지고 쌓다가 또 무너지고. 성냥갑을 모으는 사람도 많았다. 성냥은 사실 다방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생필품이었다.
경북 의성의 도심 한복판에 가면 1954년 설립된 성광성냥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성냥공장이다. 이곳은 1960, 70년대에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직원이 160여 명에 달했고 한 달 매출이 6억 원(현재 기준)을 넘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가스라이터 등의 보급으로 수요가 줄더니 2000년대 들어 사양산업이 되었다. 그 여파로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2013년 말 가동을 중단했다.
성광성냥 공장에선 원목 가공부터 포장까지 전 공정이 이뤄졌다. 원목을 구해 얇은 합판으로 깎은 뒤 잘게 썰어 성냥개비 모양으로 만든다. 거기에 파라핀 용액을 입히고 한쪽 끝에 붉은색 흰색 보라색 등의 발화 약품을 바른다. 현재 성냥 제작기계 20여 대가 건물 14동에 잘 남아 있다.
향로 성광성냥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습기가 많은 선박이나 해안에서 사용하기가 좋습니다.’ 눅눅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성냥갑 안쪽에 나무토막을 넣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동해안 지역에서 특히 많이 팔렸다. 1970년대엔 5일장에서도 팔았고, 공장으로 직접 찾아와 불량품을 싸게 사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성광성냥은 의성 주민들에게 삶의 현장이었고 추억의 공간이다.
우리나라에 성냥공장이 처음 생긴 것은 1880년대 중반. 이어 1910년대 일본인들이 인천에 조선인촌(朝鮮燐寸)회사를 설립하면서 성냥은 대중화되었고, 광복 직후 대한성냥이 생기며 우리 손으로 성냥을 만들기 시작했다. 벌써 130년이 넘었다.
이제 그 성냥을 제대로 만나고 기억할 수 있는 곳은 성광성냥뿐. 이곳을 박물관 같은 체험문화공간으로 꾸몄으면 한다. 일부를 가동해 제작 과정도 보여주고, 유럽에서처럼 고품격 성냥문화상품을 만들면 좋겠다. 삶의 애환이 가득 담겨 있는 성냥. 그 흔적을 우리는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 그건 130년 역사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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