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1운동이 일어나던 그해에 시인 구상은 태어났다. 아버지 세대, 형님 세대의 만세 운동을 듣고 자랐을 구상 시인은 자라서 필화 사건을 겪게 되었고 결국 남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도 그는 2004년까지 계속 시인의 삶에 소홀하지 않았다.
구상 시인이라고 하면 예전에는 ‘초토의 시’를 가장 많이 떠올리곤 했다. 모의고사의 힘이랄까. 교과서와 문제집을 통해 이 시인을 접한 청소년들이 퍽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구상의 다른 시를 더 기억하고 찾는 듯하다. 그것은 대중에게는 ‘꽃자리’로 많이 알려진, 바로 오늘의 작품이다.
원래 제목은 ‘우음(偶吟) 2장’이다. 우음(偶吟)이란 우연히 읊은 시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제목의 한시도 많고 유명한 시편도 여럿 되어서 제목만을 듣고 바로 구상 시인을 연상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꽃자리’라는 제목으로 이 시를 더 잘 기억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를 읽으면서 바로 자신의 상황을 떠올린다. 그만큼 누구에게나 가시방석 같은 상황이 있었거나, 있다는 뜻이다. 읽은 후의 반응은 딱 둘로 나뉜다. 자신의 자리가 불편하지만 꽃자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반대로 가뜩이나 힘든데 잔소리를 들었다는 생각. 어떤 마음이든 본인의 자유지만 새 학기, 새 출발의 3월이다. 낯설고 적응해야 할 일이 좀 많을까. 요즘의 누군가에게는 더욱 이 ‘꽃자리’의 덕담이 절실히 필요할지도 모른다. 가서 닿아라, 꽃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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