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박한규]누가 촌놈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4일 03시 00분


1980년 12월, 열아홉 소년은 서울역을 통해 처음 서울에 입성했다. 30여 분을 헤매다 제자리로 되돌아 나온 지하도, 멋없이 덩치로만 위세를 부리며 시야를 가리고 선 빌딩과 그 빌딩에 압도당한 듯한 경찰서가 맞은 서울.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 그날이 왜 그리도 추웠는지 분명히 알 것 같다.

이후 부모님 곁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은 해마다 두 번씩 겪는 명절 귀향길이었다. 이때면 서울 사람들은 인사처럼 “시골 내려가니?”라고 물었다. 서울을 제외한 전국을 시골이라 통칭하고 그곳 모두를 ‘내려가는 곳’으로 치부하는 그 편견의 뿌리에 대해서는 왜 그런지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수년 전 어느 지방지에 ‘지방화 시대에 걸맞은 지방 매체의 역할’에 대해 글을 썼는데 ‘지방’이라는 표현을 두고 갈등이 있었다. 사전적 정의는 차치하고 지역은 단순한 공간, 지방은 공간에 사람과 문화가 결합한 복합 공동체 개념으로 인식하는 나에게는 의아한 일이었다. 결국, 여전히 동의하기 곤란한 편집 방침에 따라 ‘지역’으로 결정되었지만, 열등감의 발로로 평가한다.

정작 비(非)서울 출신의 폐부를 찌르는 둔기는 시골도 지역도 지방도 아닌 ‘촌’이라는 표현이다. 더구나 ‘촌놈’ ‘촌티’ ‘촌스럽다’처럼 의미가 구체화하면 무게는 단위가 바뀐다. 사전은 ‘촌스럽다’를 ‘어울린 맛과 세련됨이 없이 어수룩한 데가 있는 것’이라고 풀이하지만, 표현의 당사자에게는 그렇게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비하의 냄새가 짙게 풍길 때가 많다.

촌스러움은 지리적 좌표의 문제가 아니더라.

외딴섬에 살면서도 기품 있고 열린 마음으로 열린 생각과 열린 행동을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서울 한복판에 뿌리내려 살면서도 옹졸하고 몰상식한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는 진짜 촌놈들도 많다. 삶의 터전의 위치를 근거로 열등한 태도와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 치부하는 이들이 진정 촌놈이다.

산업화 이후 오랫동안 글자로만 머물러 있다가 최근 입말로 되살아난 단어가 있다.

‘전원.’

“시골 내려가니”라고 묻던 친구들이 이제는 “전원생활이 어떠냐”고 묻는 걸 보면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나는 김천에서 야생 메뚜기를 먹으며 전원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혹시 촌놈이 될까 두려워 서울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늘어놓는 넋두리다.
 
―박한규
 
※필자(55)는 서울에서 공무원, 외국 회사 임원으로 일하다 경북 김천으로 가 대한법률구조공단 본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시골#지방#촌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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