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사무실에 빨간 글러브… “헝그리 정신으로 날 채찍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4일 03시 00분


[토요일에 만난 사람]세계적 건축가 日 안도 다다오

안도 다다오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뜻대로 된 건 별로 없다. 시도한 건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기회를 잡기 위해, 그리고 기회를 잡은 뒤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매진했다고 했다. 안도는 ‘성공 스토리’란 건 없다고 했지만, 그 치열함은 ‘성공의 비결’이다. 코바나컨텐츠 제공
안도 다다오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뜻대로 된 건 별로 없다. 시도한 건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기회를 잡기 위해, 그리고 기회를 잡은 뒤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매진했다고 했다. 안도는 ‘성공 스토리’란 건 없다고 했지만, 그 치열함은 ‘성공의 비결’이다. 코바나컨텐츠 제공
안도 다다오(76)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건축가다. 자연과 빛의 조화, 역동적인 공간 구성…. 국내에서도 그가 디자인한 건축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고졸자인 그가 중고 르코르뷔지에 전집을 사서 읽고 또 읽으면서 건축을 공부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15일 안도 다다오의 고향이자 사무실이 있는 일본 오사카에서 홍성태 한양대 명예교수가 안도를 만났다. 마침 한국에선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26일까지 ‘르 코르뷔지에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회는 안도가 르코르뷔지에의 건축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든 건축 모형도 함께 선보였다. 전시회를 계기로 안도의 건축 철학을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편집자 주>

안도 다다오에게 르코르뷔지에에 대해 듣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만나기 하루 전날, 설레는 마음으로 일본 오사카에 도착했다. 오사카는 안도가 어린 시절 외할머니 슬하에서 가난하지만 꿋꿋하게 자란 곳이다. 어려서부터 오사카 상인의 가르침, “약속을 지켜라. 시간을 지켜라. 거짓말하지 마라. 변명하지 마라”는 말을 듣고 자란 그의 마음이 짐짓 헤아려졌다.

안도의 삶의 토대를 형성한 오사카 인근에는 그의 건축물이 많다. 오사카에 있는 ‘빛의 교회’를 비롯해서 고베의 ‘지진 기념관’, 아와지 ‘유메부타이’와 예술의 섬 ‘나오시마’도 유명하다. 안도를 만나기 전, 그가 지은 오사카 근교의 건축물 하나를 더 보러 갔다.

‘료마가 간다’ 등의 소설을 쓴 나오키상 수상 작가 시바 료타로가 살던 집과 그 기념관이다. 시바 료타로는 평생 책을 가까이 한 다독가(多讀家)였다. 그가 생존해 있을 때부터 오랜 기간 잘 가꾸어진 정원 사이로 지어진 기념관에는 그가 모은 책 6만여 권이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빽빽하게 3층 11m 높이로 단정하게 꽂혀 있었다. 예의 안도 스타일로 지어진 건물에서, 서양의 건축기법을 빌렸지만 동양의 관조적인 아름다움이 단아하게 느껴졌다.

예전에 필자는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서 살았는데 당시는 일본식 집들이 많았다. 그런데 어렸을 때 보았던 일본식 집들이 그 동네에는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걸음걸이마저도 느릿느릿한 그 도시에는 ‘아련한 추억’과 ‘풍성한 시간’이 느껴졌다. 파괴와 건설이 뒤범벅이 된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부러운 풍경이었다.

이튿날 안도의 사무실을 찾았다. 건물 밖에는 개 얼굴 스티커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일본에서는 개를 키우는 집이라는 표시를 건물 밖에 붙인 스티커로 한다고 한다. 그 스티커를 보고 안도가 개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키웠던 개의 이름은 ‘르코르뷔지에’이다. 그 개가 죽고 또 다른 개를 키워도 그 개 이름은 ‘르코르뷔지에’다. 안도를 건축의 길로 이끈 사람이 바로 르코르뷔지에였다는데, 안도의 그에 대한 존경심과 충성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안도는 르코르뷔지에를 일컬어 건축가이면서 화가이기도 하고, 조각가이기도 하고, 작가이며 사상가라고 말한다. “아마 500년에 한 번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의 건축가와 미켈란젤로 다음에 르코르뷔지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단순히 건축가라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그들은 위대합니다.”

안도는 건축물을 짓기 힘든 비좁은 공간 혹은 경사진 공간 등 한계에 도전해 싸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건축가다. 그의 사무실도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지어져 있는데, 1층부터 4층까지 뻥 뚫려 있는 건물 구조라 1층에서 제법 큰 소리로 부르면 4층에서도 다 들린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빨간 권투 글러브를 걸어놓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17세 때 프로복서로 데뷔한 시절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76세인 지금도 권투하던 그때의 헝그리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글러브를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둔 것 아닐까? 수많은 편견과 역경에 맞서 평생을 저 권투 글러브를 바라보며 헤쳐 왔단다. 그는 지금도 “업무에 임하는 사람이 각기 자립한 ‘게릴라’처럼 되어야 한다”며 건축사무실 운영에 투쟁 정신을 불어넣고 있다.

인터뷰는 안도 자신이 지은 사무실 별관에서 진행됐다. 그가 정식으로 건축 교육을 받은 적 없이, 르코르뷔지에의 작품집을 헌책방에서 발견해 그 책의 드로잉을 수없이 따라 그리는 것으로 건축가의 꿈을 키웠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그는 르코르뷔지에의 건축도 존경하지만 그의 삶과 정신을 흠모한다고 말한다. “르코르뷔지에처럼 저는 건축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대학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건축을 많이 보러 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건축이 점점 제 몸 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세상에는 엘리트도 있지만 엘리트가 아닌 사람도 많습니다. 일본은 학력사회입니다. 한국도 그렇죠?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일에 관해서 계속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집중하여 생각한다면 자신에게 오는 기회를 반드시 잡을 수 있습니다. 잡았다면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합니다.”

안도는 르코르뷔지에의 정신에 대해 말하며 이야기를 이었다. 르코르뷔지에는 프랑스에서 살았지만 스위스 태생이고, 건축학을 정식으로 공부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의 의지만으로 대규모 파리 도시계획을 비롯해 평생 동안 전 세계에서 많은 계획을 했지만, 모두 실현되지는 못했다. 그의 사망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던 앙드레 말로는 장례식 조사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그토록 끈질기게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한 사람은 없었다. 오로지 그는 인간과 건축만을 위해 싸웠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평생을 배척받고 살았다. 그런데 안도는 르코르뷔지에가 실패한 일, 잘 풀리지 않은 일들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계속 도전했던 모습이 늘 귀감이 되었다고 말한다.

안도는 르코르뷔지에의 건축물을 실제로 보기 위해 푼푼이 돈을 모아 24세 때 프랑스에 가서 롱샹 성당을 본 감동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런데 막상 롱샹 성당에 도착한 안도는 사방에서 폭력적이다시피 쏟아지는 빛, 빛, 빛을 견디다 못해 1시간도 안 돼 밖으로 뛰쳐나왔다고 한다. 건축이란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빛을 어떻게 처리하는가가 중요한가를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르코르뷔지에가 처음으로 구상한 공동주택인 위니테 다비타시옹도 사실 그 안에 사는 모든 가구가 누구나 빛과 바람과 나무, 세 가지를 향유할 수 있도록 인간을 중심에 둔 설계이다. 오늘날 그의 철학과 원칙은 잊혀진 채, 형태만이 도입되어 우리나라에 지어진 아파트에서는 햇빛도 바람도 자연도 충분히 즐길 수 없다는 점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후 안도가 롱샹 성당을 다시 방문했을 때, 갖가지 색깔의 빛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기도하고 노래하며 미사 드리는 장면을 보며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속으로 “언젠가 나도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함께 시간을 만들어가는 장소를 건축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다짐을 가슴에 품고 지금까지 건축 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한 건축물들. 흰색 기둥과 연못이 함께해 신전 같은 느낌을 주는 이탈리아 패션회사 베네통의 연구센터 ‘파브리카’. 빛과의 조화라는 안도의 건축 철학이 드러나는 서울 혜화동 JCC 재능문화센터, 지면에서 솟은 게 아니라 땅에 숨은 듯이 어우러진 일본 나오시마 지추미술관(위쪽부터). 동아일보DB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한 건축물들. 흰색 기둥과 연못이 함께해 신전 같은 느낌을 주는 이탈리아 패션회사 베네통의 연구센터 ‘파브리카’. 빛과의 조화라는 안도의 건축 철학이 드러나는 서울 혜화동 JCC 재능문화센터, 지면에서 솟은 게 아니라 땅에 숨은 듯이 어우러진 일본 나오시마 지추미술관(위쪽부터). 동아일보DB
인터뷰가 진행된 사무실 별관은 전면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내려다보이는 중정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친구처럼 친근하게 서 있었다. 아침이 되면 날아오는 새들을 보며 자신이 새를 기른다고 생각한다니 거장의 순수한 면이 느껴졌다. 바깥 벽면으로는 가로로 길게 창이 나 있다. 그 폭이 그리 넓지는 않은데 왜 저렇게 좁고 길게 창을 내었을까 싶던 찰나, 근처 철길로 지나가는 기차가 그 창 크기에 신기하도록 꼭 맞게 지나갔다. 이곳에 앉아 기차가 어느 높이, 어느 폭으로 지나가는지를 보고 그에 맞춰 건물을 설계한 것이다. “건축은 움직이지 않으니까요. 움직이는 것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삶에서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반드시 모두에게 기회가 있습니다. 르코르뷔지에에게도 처음에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당대의 많은 사람이 그의 건축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결국 그는 차츰 세상의 주거방식을 바꾸었죠.”

르코르뷔지에의 건축물 17점이 201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점은 기념비적인 일이다. 현대 건축의 새로운 방식을 통해 20세기 시대적 난제인 주거 문제를 극복할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인류 문명에 이바지한 공헌이 컸음을 인정받은 셈이다.

이를 기리기 위해 열리는 서울 ‘르코르뷔지에전’에 안도가 도쿄대 학생들과 함께 르코르뷔지에가 구상한 모든 것을 모형으로 100점이나 만들어, 아무 대가 없이 서울 전시회에 보낸 것도 놀라운 일이다. “일본도 한국도 같은 아시아입니다. 정치와는 별개로 문화는 연결돼 있습니다. 한일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가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르코르뷔지에의 시대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 같은 많은 건축가들이 교류하고 있던 것처럼 말이죠. 당시에도 전쟁은 많이 하고 있었지만 문화는 교류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건축계에는 열정과 신념이 대단히 강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정말 강력한 일들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면서 응원도 잊지 않았다. 앞으로 한국과 함께, 일본도 서양을 배워서, 건축을 통해 전 세계에 공헌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이뤄지길 함께 꿈꿔 본다.

안도는 한때 건강이 안 좋아 수술을 했다며 담낭과 담관, 십이지장과 췌장, 비장 등 떼어낸 5개의 장기 부분을 일일이 짚어 말하면서 소탈하게 자신을 드러냈다. 그는 “저는 76세인데 장기를 잔뜩 떼어내 몸이 가벼워져서 좋아졌어요. 15년은 거뜬할 것”이라며 “아이디어와 유머와 의지와 열정을 지니고 살아갈 힘이 있다면, 모두에게 기회는 있다”며 활짝 웃는다.

“르코르뷔지에는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항상 새로운 세계를 찾았습니다. 항상 도전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르코르뷔지에가 우리의 마음속에, 정신 속에 계속 남아 있습니다. 전시회를 보시고, 르코르뷔지에는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그칠 일이 아니라, 나도 저렇게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그가 서울 전시회의 관람자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홍성태 한양대 경영대 명예교수
#안도 다다오#일본 건축가#르코르뷔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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