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라이트(1734∼1797)는 산업혁명기 영국 화가였습니다. 주목할 만한 과학적 발견이 잇따랐고, 새롭게 발명된 기계가 작동하는 공장들도 세워지던 때였습니다.
화가는 급변하는 시대 징후를 예술적 화두로 삼았습니다. 화려한 실내에서 부유함을 뽐내는 상류층 대신 어두운 공간에서 실험 중인 물리학자와 연금술사를 주인공으로 세웠지요. 사각거리는 옷자락과 반짝이는 보석 말고 공기 펌프와 태양계 모형 같은 정교한 실험 도구를 그렸어요.
화가가 태어난 영국 더비는 산업혁명의 중심지였습니다. 영국 최초로 현대적 실크 공장이 들어선 도시였지요. 화가는 런던에서 2년 정도 미술 공부를 했지만 생의 대부분을 고향에서 보냈어요. 이런 화가를 사람들은 같은 이름 선배와 구별도 할 겸 조지프 라이트 더비라 부르기도 합니다.
좀처럼 고향을 떠나지 않던 화가에게 두 해 동안 이탈리아 여행은 특별한 사건이었습니다. 다른 유럽인들처럼 르네상스 미술의 발생지이자 로마 가톨릭의 근거지가 궁금했던 것일까요. 화가는 여러 장소를 거쳐 1774년 가을 이탈리아 남단 항구 도시, 나폴리에 도착했습니다. 기원전 1세기 폭발했던 베수비오 화산을 중심으로 매혹적 풍광이 펼쳐지는 곳이었어요.
화가는 극적인 빛을 형상화하는 데 의지가 남달랐습니다. 실험실 탁자에 놓인 촛불과 공장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에서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과 천둥을 동반한 번개에 이르기까지 두루 관심을 가졌어요. 그러니 분화구에서 연기를 내뿜고, 용암을 분출 중인 화산 주변 신비로운 빛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겠지요. 화가는 여행지에서 목격한 화산 활동에서 영감을 얻어 30점 이상의 연작을 남겼습니다.
‘포실리포에서 바라본 베수비오 화산’도 그중 하나였지요. 그런데 다른 화산 연작과 달리 그림은 과거 고대도시를 집어삼켰던 화산의 힘과 위엄을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고요한 바다 위 노 젓는 사람들과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들, 구름 사이 달빛과 화산 근처 붉은 기운으로 그림의 서정성을 극대화했지요.
컴퓨터와 휴대전화가 쏟아내는 정보와 문자 사이에서 종종거렸던 하루가 해질녘 비로소 여유를 찾습니다. 머리 위 붉게 물든 하늘에 산업혁명 정신을 재빨리 포착한 화가가 그린 경이로운 풍경을 겹쳐 봅니다. 문명과 자본이 삶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수록 사용할 수도, 소유할 수도 없는 것들의 존재감이 더욱 커져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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