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궁시렁궁시렁]‘겨울연가’의 유키 구라모토? 전혀 아닙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7일 17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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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인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는 유키 구라모토는 연주회에서 농담을 즐겨 한다. “어떤 팬들은 제 음악보다는 제 농담을 듣고 싶어서 공연장을 찾아요.”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서정적인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는 유키 구라모토는 연주회에서 농담을 즐겨 한다. “어떤 팬들은 제 음악보다는 제 농담을 듣고 싶어서 공연장을 찾아요.”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겨울연가의 유키 구라모토? 전혀 아닙니다.

일본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66)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피아니스트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나온 21장의 음반은 총 누적 판매량만 200만장에 가깝습니다. 1999년 첫 한국 공연 이후 매년 한국에서 연주회를 열어 왔는데 매 공연이 거의 매진입니다. 10일부터 서울을 비롯해 전국 12개 공연장에서 연주회를 엽니다. 14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화이트데이 콘서트 ‘봄날의 꿈’ 공연을 갖습니다.

7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는 인터뷰 중간 중간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처음인데요”라며 말을 했습니다.

우선 그는 일본인들이 그에게 갖는 오해부터 풀고자 했습니다.

“1999년에 한국에서 첫 콘서트를 열고 제 인기를 실감했어요. 2003년까지 앨범 판매도 경이적이었다고 들었죠. 그런데 일본에서는 좋은 일이 있으면 신문 기사가 나지 않아요. 조금만 나쁜 일을 해도 기사가 나는데요. 그러다 보니 제가 한국에서 유명했다는 사실을 일본에서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2003년 즈음에 한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저를 다루는 언론이 생겨났어요.”

그는 자꾸만 오해가 쌓여 자신이 어느 순간 ‘겨울연가의 유키 구라모토’가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국내 언론에서도 ‘겨울연가’ OST의 작곡가로 알려지기도 했죠.

“2003년 정도에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어요. 겨울연가의 주제곡을 부른 ‘류’(Ryu)가 저에게 앨범 반주를 부탁했어요. 제가 겨울연가의 OST를 작곡한 것도 아니고 드라마에 제 곡이 삽입곡이 사용되고 반주만 했는데 일본인들은 ‘유키 구라모토가 겨울연가로 인기를 얻었네’라고 생각한거죠. 당시 일본에서는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겨울연가’라는 단어를 쓰면 모든 프로그램 시청률이 올라갔어요. 저를 소개할 때도 ‘겨울연가 주제가를 부른 류의 피아노 반주를 맡았던 유키 구라모토’가 아닌 ‘겨울연가의 유키 구라모토’가 돼 버린 거죠.”

덕분에 ‘겨울연가’의 주 시청층이었던 일본의 중년여성들이 유키 구라모토의 존재를 알게 됐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한국 드라마 OST 전문 연주자’로 소문이 나 버렸다.

“일본 지방의 공연 기획자들은 저를 섭외하면 한국 드라마 관련된 음악을 많이 연주하겠구나라고 생각을 해버린거죠. 어느 한 연주회에서 저는 제 곡을 연주했는데 관객들이 한국 드라마 곡을 연주하라고 하더라고요. 그 이후 일본에서의 콘서트 제의를 거절하기 시작했죠. 유키 구라모토는 일본에서 거의 공연하지 않는다라고 하는데 맞아요.”

다른 음악인들과 달리 그는 정규 음악수업을 받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친 것이 전부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집안이 부유한 편이었어요. 집에 피아노도 있었죠. 하지만 중학교 때 아버지의 사업이 파산해 친척 집에 맡겨질 정도로 가난해졌죠. 부모님과 함께 살지 못할 정도로요. 고등학교 때 음대 진학도 권유받았지만 비싼 등록금을 낼 돈이 없었어요.”

피아노가 없어 음악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위기에 처했던 그에게 학교에 비치된 피아노가 눈에 띄었습니다. 학교 측에 사정을 말하고 피아노 연습을 하려고 했지만 학교 측은 특정 학생에게만 피아노를 마련해 줄 수 없다며 난감해했죠.

“결국 다른 학생들이 아무도 없는 새벽이나 저녁에나 피아노를 사용할 수 있었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피아노를 칠 수 있어서 행복했죠. 다만 겨울에는 난방이 전혀 안되는 시간이다 보니 너무 추워서 장갑을 끼고 피아노를 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이 때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있을 수 없었을 거예요. 정말 학교 측에 감사했죠. 나이가 들고 유명하게 된 뒤 그 중학교에서 콘서트를 부탁받았어요. 공연 뒤 수고비를 주려고 하는데 전 필요없다고 했어요. 전 은혜를 갚은 것뿐이니까요. 이 이야기를 하니 눈물이 날 것 같네요.”

그는 중고교 때 전국에서 100등 안에 들 정도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었습니다. 일본 최고의 공대로 평가받는 도쿄공업대학에서 응용물리학을 전공했습니다. 4년 선배가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입니다.

“대학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했는데 지도 선생님이 이런 대학에서도 피아노를 좀 치는 학생이 있다며 좋게 봐 줬어요. 그 분의 소개로 호텔 등에서 연주활동을 했어요. 호텔 측에서도 프로가 아닌 학생이 연주를 하니 돈을 아낄 수 있었겠지요. 제 실력도 좋았고 맡겨진 일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하니 점차 지명도가 높아졌어요. 방송 연주도 하고, 기내 방송 음악 편곡도 하다가 1984년에 음반을 내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운도 좋았죠.”

1985년 그의 소속사인 ‘제트스트림’은 대대적인 음반 프로모션을 기획했습니다. 하지만 음반만 조용히 발표했습니다. 일본에서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제야 할 수 있다며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음반 발매를 앞둔 1985년 8월 12일 일본항공(JAL) 여객기 한 대가 추락했어요. 520여명이 사망했죠. 일본 최대 항공 참사로 불리고 있죠. 일본항공의 자회사가 ‘제트스트림’이었어요. 이런 분위기에서 앨범을 내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그냥 조용히 앨범을 발표했죠. 만약 그때 그 일이 없었다면 제가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인이 됐을 수도 있었죠. 사실 사고 자체가 불행한 사고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말하지 못했어요.”

그는 취미가 ‘수리(수학의 이론이나 이치)적인 영역’에서 머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걷기로 몸을 챙기고, 수리를 하며 정신건강을 챙긴다고 합니다.

“사실 제가 특허도 가지고 있습니다. 음악과 숫자에 관한 특허인데 별로 돈은 벌지 못했어요. 악보에 관련된 특허인데 건반이 똑같은 레 샵(#)과 미 플랫(b)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수리적으로 해결하는 겁니다. 다만 아무도 이 것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다른 것들도 특허로 내고 싶은데 변리사에게 보여주는 것도 돈이 들고, 특허 등록에도 돈이 들어서 안하고 있어요. 하하.”

김동욱 기자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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