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호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서연구실 선임연구원은 “보길도(전남 완도군 보길면)의 고산 윤선도(1587∼1671) 후손 집안에서 초간보를 포함한 고문헌 11점을 최근 수집했다”고 7일 밝혔다.
박 연구원에 따르면 이 족보는 1702년 간행됐으며 남녀 구분 없이 출생 순서대로 후손을 적고, 딸의 후손도 이름을 적는 초기 족보들의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다. 해남 윤씨 초간보는 몇 개가 더 있지만 윤두서의 소장인이 찍힌 건 이것이 유일하다.
원림(園林)으로 유명한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가 병자호란 당시 항복 소식을 접하고 제주도에 가던 도중 은거한 곳이다. 윤선도는 보길도에서 경주 설씨인 작은부인을 뒀고, 그 후손들이 대대손손 살아왔다. 윤선도가 보길도에 지은 낙서재(樂書齋)의 고도서는 일제강점기 상당수가 흩어졌고, 남아 있는 것을 이번에 수집한 것이다.
박 연구원은 “종가인 녹우당(綠雨堂)이 아니라 보길도에서 발견된 점이 매우 흥미롭다”며 “보길도의 해남 윤씨 후손들은 서파(庶派)로서 설움도 있었겠지만 족보를 300년 이상 소중하게 간직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족보는 윤두서가 보길도에 머무르며 보려고 가져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윤선도의 시문집인 고산유고(孤山遺稿)의 필사본과 윤선도가 봤을 것으로 보이는 정개청(1529∼1590)의 우득록(愚得綠)도 발견됐다. 발견된 고산유고는 별집으로 연작 시조인 산중신곡(山中新曲)이 담겨 있다. 정갈한 한글로 쓰였으며 1791년 이후 간행된 것을 후손이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우득록은 호남 사림의 맥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서인이 남인을 공격하는 데 근거로 사용됐던 저술이다. 박 연구원은 “남인이었던 윤선도는 서인에 맞서 왕권 강화를 주장하다가 20여 년의 유배 생활을 했다”며 “윤선도가 보길도에 두고 봤던 책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 밖에 묘지 관련 송사 자료 등 고문서도 여러 점 기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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