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알 카포네입니다. 금주법이 강력하게 시행되던 대공황 때 술을 몰래 만들어 팔아 떼돈을 번 악당의 대명사죠.
숨어서 밀주를 만들어 팔려면 비밀 아지트가 필요한데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일반 가정집이나 창고 등을 개조해 술집으로 꾸몄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술집들을 ‘스피키지 바(Speakeasy Bar)’라 불렀답니다. 그런데 무려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느닷없이 미국도 아닌 한국에서 그런 형태의 술집(심지어 식당들까지)이 호황인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잘 알겠지만 서울 청담동 혹은 한남동 등에서 위스키를 파는 곳들이 하나둘씩 ‘스피키지 바’ 형태로 바뀌더니 요즘은 너도나도 이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이런 흐름은 식당까지 번져 사람들이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 손바닥만 한 간판을 붙여놓고 비싼 밥과 고기를 팝니다.
남들은 법을 어기면서 간판을 크게 달지 못해 안달인데 왜 ‘꼭꼭 숨은 밥집’을 자처하는 걸까요? 이유는 많겠지만, 이런 시스템은 손님에게 스스로를 ‘프라이빗 멤버’라는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한 번 가 본 손님은 친구에게 자랑을 열심히 해댑니다. “너희들 거기 가봤어? 내가 데려가 줄까?”라며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까지 보여주니 별도의 마케팅조차 필요 없습니다.
또 하나는 비싸고 귀한 음식을 숨어서 먹으려는 행위가 혹시 가진 자에 대한 분노를 피하려는 방어기제는 아닐까요? 뉴욕에서 시작한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는 이제 전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탐욕스러운 1%에 대해 갖는 99%의 분노가 극에 달할수록, 가진 사람들은 숨으려 하고 또 귀하고 좋은 음식까지도 숨어서 먹으려 하겠지요. 하지만 부자들에 대한 지나친 거부감 역시 경기 침체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긴 합니다.
어쨌거나 위와 같은 형태의 밥집(주로 고깃집)을 저는 ‘스피키지 밥집’이라고 부르는데, 특징적으로 식당 벽에는 소를 그려놓았고, 테이블은 몇 개 없으며, 와인이나 술을 가져가더라도 별도의 수수료를 요구하지 않는 곳이 많고, 철저히 예약제로만 운영한다는 점입니다.
고백하건대, 저 역시 속물인지라 이런 숨은 밥집에 초대받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따분한 일상 가운데 가끔은 비밀스러운 아지트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기분 전환도 되거든요.
하나 걱정이 있다면, 이러한 추세가 디지털 디바이드, 잉글리시 디바이드와 같은 표현처럼 사람들을 재력과 미식 능력에 따라 나누는 미식 디바이드(Gourmet Divide)라는 말을 만들어낼까 우려됩니다. 그럴 바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내어 ‘스피키지 밥집’을 차라리 ‘스피크하드 밥집’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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