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혼란한 정국… 지어낸 거짓을 경계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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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학생이 또 기억력은 엄청 좋아서 일본문학회 연설회에서 진지하게 내 말을 따라 하는데 얼마나 웃기던지. 방청객이 한 백 명 되었는데 다들 열심히 경청하더라고.” ―‘이 몸은 고양이야’(나쓰메 소세키·창비·2017년) 》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진 채 몇 달이 흘렀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얽힌 충격적인 얘기들이 매일 신문 지면과 TV 화면을 채웠다. 필부(匹婦)의 농단에 허수아비처럼 놀아난 대통령의 모습은 꿈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끄러웠다.

문득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1905년 작품 ‘이 몸은 고양이야(吾輩は猫である)’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고양이를 거둬들인 집 주인 진노 구샤미는 ‘방 안 퉁소’(실력이 없어 퉁소를 방 안에서만 연주한다는 뜻) 같은 교사다.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그에게 지인인 미학자 메이테이는 이탈리아 화가의 조언을 전한다. 그리고 며칠 뒤 메이테이는 자신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구샤미에게 “그것은 내가 지어낸 거짓이었다”며 비웃는다. 이어 메이테이는 “전에도 어떤 학생에게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를 했더니 문학회에서 자신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더라”라는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백여 명의 방청객이 학생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습을 보며 ‘골계적 미감’이 느껴져 재미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메이테이처럼 최순실 역시 자신이 국민과 국가와 헌법 위에 군림하는 ‘높은 사람’인 양 착각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자신이 써 준 글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대통령과 대통령의 말 속에 담긴 뜻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분석하고 행간의 의미를 살피던 언론과 국민을 보면서….

다행히도 국정 농단의 두 주역이 차례로 구속되고 탄핵됐다. 썩은 뿌리가 완전히 뽑히지는 않았지만 첫발은 제대로 내디뎌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경계해야 한다. 탄핵 이후 혼란한 정국을 틈타 그럴 듯한 말을 앞세워 득세하려는 세력이 적잖다. 그들 속에 제2의 최순실은 없는지 제대로 지켜볼 일이다.

손가인 기자 gain@donga.com
#이 몸은 고양이야#나쓰메 소세키#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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