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의 호모부커스]오래된 출판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우리나라의 가톨릭출판사는 일본 나가사키에서 성서활판소를 서울 정동으로 이전해 온 1886년을 설립 시점으로 삼는다. 1898년 명동성당 내로 옮기면서 ‘가톨릭출판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아펜젤러, 언더우드, 스크랜턴 등 선교사들이 주도하여 1890년 조선성교서회로 출발한 대한기독교서회도 127년 역사를 이어왔다. 두 출판사는 서양 근대출판의 수용과 한글 인쇄출판의 역사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출판사는, 1534년 영국 국왕 헨리 8세가 “나아가 지식을 나의 영역에 널리 퍼뜨려라”라는 명령과 함께 특허장을 내려 시작된 케임브리지대출판부다. 오늘날 세계적인 학술 출판사인 E J 브릴은 1683년 네덜란드 레이던의 서적상 조합에 등록하면서 시작됐으며, 처음부터 레이던대와 긴밀히 협력했다. 각각 영국 르네상스 시기와 네덜란드 전성기에 출발했다는 점에서 출판문화의 발달과 국가의 번영이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일본에서는 1886년 창업한 주오고론샤(中央公論社)가 1990년대 말 요미우리신문사 계열로 편입된 뒤에도 역사를 이어가는 중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출판사들인 고단샤(講談社)와 이와나미쇼텐(巖波書店)은 각각 1909년과 1913년에 출발했다. 일본은 에도 시대에 출판업이 크게 번성했다. 1658년 창업한 스하라야 모헤(須原屋 茂兵衛)가 이 시대를 대표한다. 1904년까지 창업자 가문 9대에 걸쳐 246년간 이어졌다.

근대 중국 출판의 역사 그 자체인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은 1897년 상하이의 인쇄공 네 명이 상업인쇄소로 시작했다. 청나라 진사(進士) 출신으로 외교 분야에서 일한 장위안지(張元濟·1867∼1959)가 1905년부터 상무인서관을 탈바꿈시켰다. 상무인서관과 쌍벽을 이루는 중화서국은 상무인서관 편집부장 루페이쿠이(陸費逵)가 1912년 창립했다. 중국의 전통 학술은 이 두 출판사를 양 날개 삼아 고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면, 1945년에 설립되어 지금도 활발하게 책을 내는 을유문화사와 현암사가 있다. 오래 살기만 하는 장수가 아니라 건강장수가 중요하다. 출판사 건강장수의 조건은 무엇일까? 전통의 무게에 눌리지 않고 그것을 디딤돌 삼아 변화를 추구한다. 익숙한 것에만 의지하지 않고 새로운 영역으로 발을 내딛는다. 이렇게 변화하고 도전하면서도 전통에 실린 기본적인 가치를 지켜 나간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가톨릭출판사#케임브리지대출판부#스하라야 모헤#출판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