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does it mean to do something LIKE GIRL?’(여자답게 행동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난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P&G 위스퍼의 광고 문구다. 광고엔 두 실험집단이 나온다. 10세 이상의 남녀와 10세 미만의 소녀. 감독은 ‘깊이 생각하지 말고 처음 떠오르는 행동을 보여주면 된다’며 ‘여자답게’ 달리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주문한다.
놀랍게도 ‘같은 지시’에 ‘다른 반응’이 나왔다. 10세 이상의 남녀 실험자는 모두 비슷한 동작을 보였다. “양팔을 어깨 높이로 올려 가볍게 흔들고 허벅지는 고정한 채 종아리로만 달린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쓸어내리며 ‘아, 내 머리’라고 새침하게 말한다.”
10세 미만 소녀들은 달랐다. 이들은 양팔을 앞뒤로 흔들고 허벅지를 상체 쪽으로 올리며 힘차게 질주했다. ‘여자답게 달리라’는 말의 의미를 묻자 7세 소녀는 이렇게 답한다. “최대한 빨리 달리라는 뜻요.”
오늘 오전 출근하면서 회사 근처 커피전문점에 들렀다. 여느 때처럼 커피를 주문해 마시는데 컵 홀더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를 맞아 내놓은 분홍색 컵 홀더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를 가장 여자답게.’
“대체 여자다움이 뭘 의미하는 거야!” 보자마자 분노가 느껴졌다. 특정 성(性)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는 표현이라고 생각해서다. 특히 ‘여자답게’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화를 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여자답게’라는 말에 대한 여성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수긍하거나 반발하거나 개의치 않거나. 내 경우이기도 하지만 반발하는 사람의 심리는 이렇다. ‘여자답게’라는 말을 욕으로 듣는 동시에 ‘여성스럽지 않다’는 말은 칭찬으로 여기는 거다. 여자다움을 둘러싼 편견을 비판하면서 여자다움 자체를 ‘비하’해온 나는 그동안 페미니스트를 자처했지만 결국 남존여비(男尊女卑)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셈이다. 모순이다.
광고 마지막에 6세 소녀가 말한다. “여자답게는 ‘나답게’라는 말이에요.” 그 나이 땐 나도 ‘여자답게’를 ‘나답게’라 생각했을까. ‘여자답게’를 내세워 분홍색 하트 모양 과자를 팔려는 커피전문점의 상술보다 나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껴진 화이트데이의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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