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진정한 ‘봉황 대통령’을 기다리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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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분수대광장의 봉황상.
청와대 분수대광장의 봉황상.
안영배 전문기자
안영배 전문기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가 내려진 10일, 청와대 본관에 게양된 봉황기도 내려졌다. 청와대의 주인이 사라졌으니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깃발도 나부낄 명분을 잃어버린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사저로 돌아간 이튿날,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의 봉황 조형물을 찾아보았다. 여느 때와 달리 ‘기운이 빠진’ 봉황상이 을씨년스럽게 비쳤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봉황을 통치자의 상징으로 사용해왔다. 조선의 궁궐인 창덕궁과 창경궁 정전에는 왕을 상징하는 봉황 문양이 조각돼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봉황이 날아와 태평성대를 기뻐한다는 뜻의 ‘봉래의(鳳來儀)’ 의식을 궁궐에서 치렀다고 전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황금 빛깔의 봉황 휘장은 대통령의 상징으로 채택됐다. 외교문서 조인 등에 사용하는 국새에도 수컷인 봉(鳳)과 암컷인 황(凰)을 상징하는 봉황 한 쌍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봉황을 우리나라 최고 권위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봉황은 제왕적 대통령 이미지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이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임기제 대통령을 여전히 왕으로 인식하는 정서가 우리 사회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탄핵 반대 단체는 왕조시대에나 등장하는 ‘역모’와 ‘반란’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불복 움직임을 보였다. 또 박 전 대통령 스스로도 대통령과 왕을 명확히 구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쩌면 임시직 대통령과 종신직 제왕을 구별하지 않는 한국적 정서가 오늘의 비극을 불렀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봉황 문화가 중국을 사대하는 전통이라며 폄훼하는 이들도 있다. 중국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황제의 상징인 황룡(黃龍)을 사용하지 못하고 그 대신 황후를 상징하는 봉황을 채택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오해다.

봉황과 용은 흔히 음양의 기운으로 대비된다. 용은 ‘물의 지배자’ 이미지로 음을 상징하며, 봉황은 세상을 밝히는 태양의 이미지로 양을 상징한다.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용을 선호해 스스로를 ‘용의 자손(龍孫)’이라고 생각해왔다. 반면 한국인들은 천도(天道)의 전령사인 봉황을 귀하게 여겨 스스로를 천손(天孫)이라고 자부했다. “봉황은 동방 군자의 나라에 출현한다(說文)”는 기록처럼, 한국인들은 하늘의 뜻을 전달하는 봉황을 신조(神鳥) 혹은 천조(天鳥)로 받들었던 것이다.

고대 한국의 봉황 전설을 다룬 ‘봉황의 나라’ 작가 은영선은 용보다 봉황을 한 수 위로 쳤다고 말한다. “물속에서 온갖 조화를 부리는 용은 권력 투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지만 분노의 기운이 강해 가까이 하기가 어렵다. 반면 봉황은 햇볕 같은 따스함과 감동을 통해 세상을 품어주며 분노를 모르는 존재”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봉황은 뭇 짐승을 굴복시키는 유일한 신수(神獸)다. 이것이 한국인들이 봉황을 사랑하는 진정한 이유라고도 한다. 우리가 유독 대통령에게만큼은 봉황의 덕치(德治) 리더십을 기대하는 것도 이런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대통령 상징물인 봉황은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다.

풍수 답사차 발품을 팔다 보면 한국인들의 봉황을 염원하는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다. 전국적으로 봉황과 관련된 산과 마을 지명이 130여 곳에 이를 정도다. 풍수에서는 봉황 형국(形局)을 갖춘 터에서는 어질고 고귀한 인물이 나타난다고 본다. 그래서 봉황 기운이 오랫동안 머물도록 오동나무(봉황 서식처)와 대나무(봉황 먹이) 등을 심기도 했다. 여건이 안 될 경우 이름 비방(秘方)까지 동원했다. 봉황 혈(穴) 주변에 봉죽리(鳳竹里), 죽방산(竹防山), 오산(梧山), 봉담(鳳潭) 등의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봉황의 기운을 붙들어 놓으려 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비보(裨補)풍수다.

조기 대선체제를 맞아 봉황 관련 도참설이 여기저기 생겨나고 있다. 한 대선주자의 조상 묘가 봉황형 명당이라서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하다는 풍수설이 나돌고, 지방자치단체장인 또 다른 대선주자는 관할 지역내 오동나무 기운 덕분에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한다. 또 한 유력 여성 정치인은 자신에게 봉황의 기운이 있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봉황의 꽁지깃처럼 장식하고 다니다 오히려 낭패를 당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진정한 봉황 기운은 사람을 덕으로 감싸고 포용하는 정치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나같이 동물 관상을 가진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의 지도자들을 제압할 수 있는 참 봉황이 나오기를 그 어느 때보다도 염원하는 요즘이다.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봉황 대통령#박근혜#봉황#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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