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립 “인간의 이타심을 동물에서 찾으려는 건 지나친 비약”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6일 03시 00분


‘인간 본성의 역사’ 펴낸 예술사회학자 홍일립 박사

흡혈박쥐가 피 토해 동료 먹인다고 동물에도 이타성 있다는 건 무리… 의식적 감정이입 등은 인간만 지녀
운동권-여론조사전문가-기업인 이력, 2002년 盧-鄭 후보 단일화도 이끌어… “이젠 ‘잊혀진 인물’로 살아가고파”

《흔치 않은 이력이다. 초등학교를 절반밖에 못 다녔지만 예술사회학 박사가 돼 만만찮은 저작을 펴냈다. 젊은 시절 혁명을 꿈꿨고, 중년에는 한 대통령의 당선에 일익을 맡았고 지금은 중견기업의 대주주다. 최근 ‘인간 본성의 역사’(에피파니·사진)를 낸 홍일립(본명 홍석기·61) 박사를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서재에서 만났다.

책 ‘인간…’은 웬만한 사전 두께(7cm)다. 동서양의 고대부터 현대, 철학·사회과학과 생물학을 넘나들며 인간 본성에 대한 관념의 역사를 전개한다. 469명의 이론가가 등장하고 참고문헌만 총 1596종이다.》
 

홍일립 박사는 “인간은 식색(食色)의 생존과 번식 본능을 타고난 유기체이면서, 경이로운 정신 능력 덕에 동료를 돕고 남을 해치지 않는 ‘2H(Helping and not Hunting)’와 관련된 규칙의 토대 위에서 모여 산다는 사실만을 알 뿐”이라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홍일립 박사는 “인간은 식색(食色)의 생존과 번식 본능을 타고난 유기체이면서, 경이로운 정신 능력 덕에 동료를 돕고 남을 해치지 않는 ‘2H(Helping and not Hunting)’와 관련된 규칙의 토대 위에서 모여 산다는 사실만을 알 뿐”이라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침팬지를 수십 년 동안 관찰하면 성악론자가 되고, 보노보의 공감 행동을 보면서 성선론에 기운다면 생물학적 증거란 과연 믿을 만한 것일까요?”

책에는 인간 본성을 과학으로 규정하려는 시도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계속 등장한다. 그는 “지금의 사회생물학이나 진화심리학은 가치가 개입된 추정, 기대, 비유로 가득 찬 ‘가설들의 꾸러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흡혈 박쥐가 자기가 먹은 피를 토해서 배고픈 동료를 먹이는 것에서 이타성이 동물적 기원을 갖는다고 보는 건 비약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지닌 의식적 감정이입의 증거나 순수한 이타적 동기의 증거는 다른 어떤 동물에게서도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동물에게서 찾으려는 건 태산같이 쌓여 있는 주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보조 재료나 포장지로 완제품을 만들려는 일이지요.”

이력에 관해 거듭 묻자 홍 박사는 손사래를 치다가 자기 얘기를 띄엄띄엄 풀어놨다. 그의 삶에는 빈곤과 극단적 이데올로기 대립, 경제 성장, 민주화와 정권 교체 등을 수십 년 사이에 겪은 우리 현대사의 여러 얼굴이 각인됐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니다 학업을 중단한 뒤 4학년 2학기에 다시 들어갔다. 한글은 4학년 때 익혔다. 고교 1학년을 중퇴한 뒤 입주 가정교사로 일하다 연세대 사회학과에 76학번으로 입학했다. 대학에서는 칸트를 탐독하면서 외국서적을 번역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사실 그는 아주 가까운 가족이 월북해 신상에 이른바 ‘빨간 줄’이 가 있었다. “공부 말고 다른 길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마르크스주의를 접했다. 인터넷으로 ‘홍일립’을 검색하면 일본 학자가 쓴 자본론 해제인 ‘국제무역의 정치경제학’(1984년)이 등장한다. 일립(一笠·삿갓 하나)은 오래된 필명이다. 뜻을 묻자 “삿갓을 쓰면 부조리한 세상이 보이지 않아서”라고 했다.

1984년 대학원에 입학했다. 사복경찰 ‘백골단’이 도서관에 들어와 그의 옆자리에서 공부하던 학생의 긴 머리채를 잡고 머리를 책상에 내리꽂았다. “공부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싶었지요.”

결국 이듬해 경기도의 한 공장에 들어갔다. “공산주의 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죠. 용어는 그랬지만 인권이 존중받는 민주사회를 꿈꿨던 겁니다.” 조직에서 지도급 위치를 맡았다. 알 만한 386세대 운동권이 그의 후배들이다. 합법적 활동을 가장하기 위해 여론조사연구소 현대리서치를 세우기도 했다.

1991년 ‘지하 생활’을 정리했다. 옛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노태우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결심의 계기가 됐다. “‘소비에트가 무너지는구나, 어렵겠구나’ 생각이 들었죠.” 아내와 단칸방 살림을 했던 그는 1993년 ‘먹고살려고’ 화장품 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2000여억 원의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에서 정세분석국장으로 일했고, 여론조사회사 폴앤폴을 세웠다가 2000년 봄 총선 뒤 월간지에 ‘영남권 후보론’을 기고했다. 홍 박사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캠프의 총괄기획실장을 맡아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을 이끌었다. 노 대통령 당선 전후 ‘반미하지 말라’ 등의 건의를 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을 전후로 해서 한국 사회에서 권력이나 부, 명예가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어느 순간 그런 세계와 ‘안녕’하고 싶더군요.”

2010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속을 멀리하겠다고 마음먹고 집필을 결심한 게 이번 책이다. 가난과 풍요, 운동가와 기업가의 궤적이 뒤섞인 그의 삶은 일견 모순적이다. 그러나 그게 또 한국 현대사 아니겠는가.

“나름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생각하고, 운이 좋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하고 싶었던 일은 대강 다 한 것 같아요. 이제 ‘잊혀진 인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인간 본성의 역사#홍일립#인간의 이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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