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으로 출퇴근하면서 대표적 번화가 5번 애비뉴의 대형서점을 의식적으로 잠시라도 들른다. 신간 서적 코너에서 미국 사회 흐름의 단면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관련 새 책들에선 상반되는 두 가지 흐름이 보인다. 하나는 ‘트럼프는 어떻게 대선에서 이겼고,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를 분석한다. 다른 하나는 ‘트럼프가 통치하는 미국을 우린 어떻게 견뎌내야 하나, 또는 그에 어떻게 맞서야 하나’를 얘기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트럼프의 미국에서 당신의 가치를 지키려면’(What We Do Now―Standing Up for Your Values in Trump‘s America·데니스 존슨, 밸러리 메리언스 공편)은 진보좌파 진영의 이른바 ‘반(反)트럼프 투쟁 지침서’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진보 인사 27명의 에세이를 △진보 어젠다 △인종 문제 △이민자 △여성 권리 △기후변화 △종교 자유 △경제 불평등 △성적(性的) 소수자 권리 등 11개 주제에 나눠 실었다. 워싱턴의 대표적 진보 전사(戰士)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연방 상원의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뉴욕타임스의 대표적 진보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노동장관이었던 로버트 라이시, ‘미국 여성운동의 살아있는 전설’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이 참여했다.
샌더스 상원의원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제목의 글에서 “월가와 부자들만을 위한 금융 시스템부터 뜯어고치자. 일반 국민과 중소기업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시스템으로 만들자”고 주장한다. ‘스스로 부실을 자초한 대형은행을 일반 국민의 돈(세금)으로 살려내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잘못된 관행부터 뿌리 뽑자. 너무 커서 망할 수 없다면 존재(생존)하기도 너무 크다’는 샌더스 특유의 과격한 월가 개혁론을 편다. 이 책의 편집자인 데니스 존슨은 “이 진보 인사들은 ‘지금은 미국의 새로운 저항운동(resistance movement)이 필요하다’고 말한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라이시 전 장관은 ‘(트럼프 정부 출범) 100일간의 저항운동 지침서’를 상세히 적었다. 예를 들면 ‘여성의 행진’ 같은 반트럼프 성향의 시위에 적극 참여하고, 트럼프 브랜드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고, 구독률 높은 신문사 독자투고를 통해 저항의 의지를 표출하고, 저항을 상징하는 배지나 자동차범퍼 스티커 등을 붙이고 다녀라 등등.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뉴욕 같은 진보 성향의 대도시에선 ‘트럼프 스트레스’ 때문에 심리상담이나 명상요가, 술집 매출이 급증했는데 작은 출판사에서 발간한 이 책도 주문이 쇄도하면서 ‘예상 밖 히트’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출판사 측은 “국민 스트레스가 영업상 호재가 되는 현상이 기쁘지만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 등에선 진보 진영의 ‘반트럼프 저항 운동’에 대해 “지금 선과 악의 최후 전쟁인 아마겟돈을 하는 것이냐”고 비판한다. 트럼프 행정부를 척결해야 할 악의 무리처럼 여긴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아마겟돈 논쟁을 시작한 건 보수 진영이다. 지난해 대선 때 보수 성향 선거 전략가 딕 모리스(71)는 ‘아마겟돈―트럼프가 클린턴을 이길 수 있는 방법’에서 “이번 대선은 아마겟돈이다. 부패한 거짓말쟁이 힐러리 클린턴이 승리하면 우리가 아는 위대한 미국은 더 이상 없다. 트럼프가 아마겟돈에서 이겨야 미국이 산다”고 주장했다.
승리자 트럼프가 패배자들의 스트레스와 저항운동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까. 미국의 위대함은 그 결과에 달려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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