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은 시예요! 유남생(You know what I‘m saying·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어요)?”
1999년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며 도발적인 노래 제목과 함께 등장한 힙합 그룹 ‘드렁큰타이거’의 데뷔 앨범에는 이 같은 외침이 나온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같은 해 데뷔한 ‘거리의 시인들’이란 힙합 그룹은 이름에 시인이라고 적어 놓기까지 했다. 이처럼 힙합 가수들이 시와 힙합(랩)의 연관성을 부르짖은 이유는 무엇일까.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콜로라도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이 책에서 힙합과 시의 유사성에 주목한다. 영문학자답게 어학·문학 전공 지식과 힙합 가수들의 실제 음악을 바탕으로 분석해 나간다. 저자는 힙합의 구성 요소를 △리듬 △라임 △언어유희 △스타일 △스토리텔링 △설전(舌戰·시그니파잉) 등 6가지로 구분했다. 책의 진행 역시 각 키워드에 맞는 전설적인 힙합 가수들의 랩 가사들로 채워져 이해를 돕는다.
저자가 힙합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언어다. 멜로디와 박자 등이 중시되는 다른 음악 장르와 달리 가사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 힙합이다. 가사의 라임과 언어유희 등을 통해 리듬감을 확보한다는 면에서 시어를 이용해 운율을 만들어내는 시의 원리와 유사하다.
특히 라임은 힙합에서 사용하지 않는 경우를 찾기 힘들 정도다. 20세기 미국 힙합계의 전설 투팍(2pac)의 노래 ‘캘리포니아 러브’를 보자. “Out on BAIL, fresh out of JAIL, California DREAMIEN(보석금으로 막 석방되었지, 캘리포니아를 꿈꾸며).” 각운과 음의 유사성을 이용해 자연스러운 리듬감을 확보한 이 같은 방식은 존 밀턴의 명시 ‘실낙원’에서도 찾을 수 있다. “Heaven openeD wiDe/Her ever-During Gates/Harmonoius sound(하늘이 활짝 열렸다. 그 영원한 문, 조화로운 소리).”
저자는 최근 들어 시가 라임 활용을 등한시하면서 대중에게 외면당하고 있다며 힙합이 시에 대한 대중의 욕구를 대신 충족시켜주고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최근 예술 장르 중 힙합만큼 직유와 은유, 대구와 환의 등 각종 문학 장치의 형식적 범위와 표현 가능성을 넓힌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공로만으로도 전설적인 힙합 가수들은 시 문학계에서 존중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힙합만이 최고의 장르라고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는 것은 아니다.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표현이 많은 힙합의 한계에 대해서 미국 흑인들이 만들어낸 역사적 맥락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反)사회적인 랩보단 균형 잡힌 메시지를 담은 노래들이 명힙합 곡으로 인정받는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책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힙합 가수들의 가사 한 마디에 관심이 커진다. 누가 알까. Mnet ‘고등래퍼’나 ‘쇼미더머니’ 프로그램에 출연한 힙합 가수들이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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