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힘들땐 어디서 위로받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 “지금까지,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아 왔어, 라고 나는 생각한다”―‘키친’(요시모토 바나나·민음사·1999년) 》
 

최근 부모님 집에 있던 식탁을 버렸다. 동생보다 불과 한 살 어린, 27년이나 된 녀석이었다. 엄마는 “진짜 오래됐다, 버려도 누가 뭐라 하지 않겠다”고 하셨지만 내심 서운했다.

그 식탁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내 세뱃돈을 모아 산 것이었다. 당시 태어난 지 1년 남짓 된 동생은 등교와 출근 등으로 식구들이 바쁠 때면 혼자 의자를 타고 식탁 위로 올라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다리가 약한 식탁은 심하게 흔들렸다. 결국 어느 날 균형을 잃은 동생은 바닥으로 떨어져 울음을 터뜨려야 했다.

“엄마, 이걸로 식탁 새로 사자. 애기 안 떨어지게.”

엄마에게 세뱃돈 통장을 내밀며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엄마는 친지나 지인들에게 자랑했다. 어린 내가 정말로 그렇게 기특한 말을 했을까 싶지만 엄마의 설명은 그랬다. 새 식탁은 다리가 튼실했고, 동생은 더 이상 식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동생이 생겼을 때 전혀 반갑지 않았다. 오히려 독차지하던 가족의 사랑을 하루아침에 뺏기고 뒷전으로 밀려난 서운함이 컸다. 그때 찍은 사진에서 항상 우울한 얼굴로 서 있는 아이가 바로 나였다. 통장을 내놓은 건 유년시절 동생을 위한 나의 첫 애정표현이었다.

동생의 고마움을 깨닫기 시작한 건 스무 살이 넘어서였다.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 오랫동안 준비했던 시험공부를 접고 전혀 다른 일을 찾아야 했을 때,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혼자 남겨졌다고 생각했을 때 동생은 흔들림 없이 내 옆을 지켜줬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키친’에 등장하는 미카게, 유이치는 가족이 아닌 남남이지만 사랑하는 이를 잃고 힘들 때 서로 보듬어준다. 상실의 순간에 서로에게서 뜻밖의 위로를 얻은 이들은 ‘지금까지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봐 왔다’고 독백한다. 가족의 사랑을 뺏어갔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위안이자 버팀목이 되고 있는 동생에게 문득 그렇게 고백하고 싶다.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키친#요시모토 바나나#민음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