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왕산 아래. 흔히 서촌이라 부른다. 골목길을 따라 인왕산 초입으로 쭉 들어가면 수성동(水聲洞) 계곡이 나온다.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 계곡 공원엔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찾는 사람이 많다.
계곡 북쪽 언덕길을 오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란다. “여기에 웬 건물 잔해가 있지?” “전쟁 때 폭격 맞은 것인가? 누가 부수다 만 것 같기도 하고.” 건물 잔해 앞에 작은 안내판이 서 있다. ‘7동 일부분만 남김으로써 개발 중심 근대사의 오류와 그 의미를 반성하고 되새길 수 있도록….’
인왕산 계곡엔 아파트가 있었다. 1971년 건축된 옥인동 시범아파트. 모두 9동 308가구였다. 아파트 초창기인 데다 물 좋고 산 좋은 인왕산 계곡이었기에 이 아파트는 당시 장안의 화제였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옥인시범아파트가 인왕산 경관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계곡을 콘크리트로 덮었고 건물들이 인왕산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이곳을 원래 모습으로 되살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2007년 공원화가 결정되었고, 2008년 아파트 철거를 시작해 2012년 마무리됐다.
그 과정에서 논란도 있었다. ‘공원화 결사반대’와 같은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다. 아파트 사이 옥인교 아래 계곡에서 수영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흔적도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건물 한 동의 1층 벽체 일부를 헐다 만 채로 남겨두었다.
그게 바로 지금의 건물 잔해다. 부서진 벽체, 떨어져 나간 타일, 삐죽 튀어나온 녹슨 철근, 칠이 벗겨진 창틀, 툭 끊어진 수도관…. 좀 떨어진 곳에 콘크리트 계곡의 흔적도 남아 있다. 이곳에서도 신나게 물놀이를 했을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옥인동 일대는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살았던 곳. 그는 여기서 진경산수화 명품들을 탄생시켰다. 일제강점기 윤동주는 여기를 오가며 시를 지었다. 그 흔적들을 기억하기 위해 아파트를 철거하고 경관을 복원한 것이다. 당연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렇지만 시범아파트 41년의 일상 또한 중요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제, 그것까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수성동 계곡에서 예상치 않게 만나는 아파트 건물의 잔해. 인왕산 경관을 훼손했던 아파트 잔해를 통해 역설적으로 환경과 역사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건 분명 색다른 경험이고 매력적인 기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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