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 1은 선(線)이다. 하지만 셋이 만나면 면(面)이 되고, 넷이 만나면 입체가 된다. 1 대 다(多), 다 대 다 형식으로 화제의 인물과 이슈를 만나는 ‘집단토크쇼’를 시작한다. 내부자 또는 외부자의 ‘돌발 토크’도 있다. 동아닷컴(www.donga.com)과 동아일보 문화부 페이스북에서도 인터뷰 내용을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사회성 있는 영화들이 당대 한국인의 의식을 보여준다면 감동과 웃음을 무기로 관객의 마음을 파고드는 윤제균 감독(48)의 영화는 한국인의 무의식을 드러낸다. 국내 두 명 뿐인 ‘쌍천만’ 감독인 그는 최근 자신이 이끄는 JK필름 제작 영화 ‘공조’가 관객 781만 명을 기록하며 또 한 번 ‘장타’를 날렸다.
■ 탐색전
“제목도 그냥 ‘김일’로 하면 되겠는데?” 본격 인터뷰 며칠 전 JK필름 멤버들과 저녁을 함께했다. 윤 감독은 프로레슬러 김일(1929∼2006)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며 ‘흥분’해 헤드록을 걸고 머리를 쥐어박는 선수의 표정과 신음까지 흉내 냈다. 그건 영락없이 1970년대 작은 흑백TV 앞에서 넋이 나간 아이의 얼굴이었다. 이건 가면이 아닐까?
■ 소문과 진실
17일 서울 강남구 JK필름 사무실을 찾았다. ‘국제시장’이 2015년 베를린 영화제에 진출했다는 소문(?)부터 확인했다.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받았는데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정말인지.
“제 억울한 부분 중 하납니다. 윤제균 하면 상업 영화, 흥행 영화만 만드는 감독이니까 영화제하고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윤 감독의 영화는 “싼마이(3류를 뜻하는 속어)” “재미있는데, 그게 끝이다”는 평도 있었습니다.
“한 십년 넘었나요? 아내가 인터넷 댓글을 보고 ‘대성통곡’을 하더라고요. ‘한국 영화계를 위해 윤 감독 당신 같은 쓰레기는 떠나라’는…. 그런데, 결과에는 다 원인이 있잖아요. 제가 그런 의견이 안 나올 정도로 영화를 잘 만들었으면 악플이 안 달렸겠죠. 요즘은 좋은 ‘선플’들이 많아요. 하하.”
―이제 익숙해질 법한데요.
“제가 소심하고 여린 편입니다. 욕먹고 기분 좋은 사람 없잖아요. 저는 상업영화지만 웰메이드를 만들려고 온 힘을 다 바치거든요. 장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투자자들 설득해서 감독에게 돈을 더 쓰라고 하기도 하지요. 흥행이 될까, 안 될까를 기준으로 삼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영화의 완성도지요.”
■ 진짜냐?
그는 평소 인터뷰에서 “항상 내려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연예인스러운’ 답변을 해 왔다.
―내려갈 준비를 어떻게 한다는 건가요.
“‘해운대’ 제작할 때 빚이 10억 원이 넘었습니다. 집 잡혀 투자하는 상황이었죠. 아내에게 ‘여보, 우리 신혼 때 마포 아현동 10평짜리 반지하에서 3년 살았잖아. 이번 영화 망하면 다시 반지하로 가야 돼’ 했더니 그래도 괜찮다고 하더군요. 신혼 시절 집이 좁다뿐이지 행복했고, 별 불만이 없었어요. 지금도 잘 안되면 반지하로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연출할 때 스태프 이름을 다 외운다’는 것도 잘 믿기지 않습니다. 200명은 될 텐데….
“연상 기억법이 있어요. 촬영 현장은 서너 달 같이 지내는데 분위기가 안 좋으면 그게 지옥입니다. 이름 외우는 노력만으로 천국이 되는데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면 별로 힘든 일은 아닙니다.”
■ 까칠한 질문
‘두사부일체’ ‘색즉시공’을 비롯해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를 주로 만들던 그는 아이가 생긴 뒤에는 거의 12세, 15세 등급의 영화를 만든다. 첫째 아들이 중학교 1학년이다.
―첫째가 성(性)에 한창 관심 많을 나이인데, ‘색즉시공’ 보고 싶다는 얘기 안하는지요.
“아마 아빠가 그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를 잘 모를 겁니다.(웃음)”
―나중에는 알 텐데요.
“결국 보겠죠. ‘색즉시공’에는 분명히 담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어요. ‘사랑은 장난이 아니고, 임신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아들이 보더라도 아빠로서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나중에 같이 볼 건가요?) 그럼요. 성에 대해 제가 가르치는 게 좋겠지요.”
■ 인생사 새옹지마
광고회사에 다니던 그는 5년 내내 광고 제작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4년은 서류 작업을 하는 전략기획팀에서 일했다.
“외환위기 뒤인 1998년 회사에서 돌아가며 한 달 무급 휴직을 시켰어요. 여행 갈 돈도 없으니 집에서 쓴 시나리오가 ‘신혼여행’이죠. 이듬해 우연히 공모전 광고를 보고 냈는데 당선됐어요. 강제 휴직과 수중에 돈이 없던 우연이 겹쳐 지금의 제가 있는 거지요.”
―운이 좋았던 건가요.
“주어진 상황에서 진짜 최선을 다했어요. ‘두사부일체’ 시나리오는 회사 다닐 때 썼는데, 서너 달 동안 하루 4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어요. 밤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 쓰고, 다시 출근했죠.”
■ 떼돈?
윤 감독은 최근 CJ E&M에 JK필름 지분 51%를 넘겼다. 떼돈을 벌었다는 소문도 있다.
―얼마나 벌었나요.
“말 안 하기로 했는데…. 많이 벌었죠. 임차료 걱정 없이 영화 만들려고 근처에 4층 규모의 사옥을 준비하고 있어요. 해외에 나가니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이 저를 만나주지도 않아요. 거의 ‘누구냐, 넌’ 이런 식이라…. 그래서 CJ와 손을 잡은 거지요. 영어 영화를 만들어 시장을 해외로 넓히고 싶습니다.”
■ 인터뷰 후기
윤 감독은 “수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이번이 가장 긴장됐다”고 했다. 하지만 불편할 수 있는 질문에도 시종일관 여유가 넘쳤고, ‘쌍천만’ 감독답지 않게 소탈했다. 그게 노력으로 만들어낸 얼굴이라 해도 이 정도 일관되면 대단하다 싶다. 윤 감독은 “3대가 손잡고 보면서 행복해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