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만, 북촌에 그가 건설한 한옥집단지구 가회동 31번지의 아름다운 외형만을 기억할 뿐이다.―건축왕, 경성을 만들다(김경민·이마·2017) 》
서울에서 가장 ‘핫’한 동네 가운데 하나인 종로구 가회동 북촌에는 작은 한옥들이 처마를 이어 가며 모여 있다. 도심 속 고즈넉한 분위기에 반해 외국인뿐만 아니라 국내 나들이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정작 북촌을 조성한 사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더군다나 북촌이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 거주지를 사대문 안으로 확장하려는 일본의 전략에 맞서 조성된 일종의 ‘뉴타운’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는 북촌을 만든 인물, ‘건축왕 정세권’을 다루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수도인 서울을 장악하기 위한 도시개발정책을 세운다. 청계천을 기준으로 남쪽에 몰려 있던 일본인 거주지를 북촌까지로 확장하고, 경성 내 농지와 빈 공간에 새로운 거주지를 조성하는 일종의 신도시·뉴타운 건설 계획이었다.
정세권은 1920년에 부동산 개발회사인 ‘건양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의 계획대로 일본인 거주지가 북촌으로 확대될 경우 조선인이 거주지를 잃고 쫓겨날 수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이에 지금의 북촌 지역 땅을 매입해 한옥을 대규모로 공급했다. 집값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할부 판매 방식을 도입했다.
정세권의 일본과의 주택 전쟁은 북촌뿐만 아니라 왕십리에서도 벌어졌다. 이른바 ‘왕십리 토지 전쟁’이다. 일본은 일본인 거주지 확장을 위해 왕십리를 포함한 서울 곳곳에 서양식 주택을 집단으로 지어 올리려 했다. 정세권은 왕십리 일대의 땅을 사들이며 일본의 계획을 막았다. 이에 미움을 산 그는 왕십리에 있는 11만6420m³ 사유지를 일제에 빼앗기며 쇠락의 길을 걸었다.
북촌은 단순히 외관만 아름다운 한옥촌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한 건설인의 고군분투와 굳은 의지가 담긴 역사적 산물이다. 외출하기 좋은 어느 봄날, 북촌 골목길에서 정세권의 결기를 느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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