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올드 이즈 더 뉴 뉴]23세 뮤지션, 디지털시대 재즈에 ‘구원의 등불’ 밝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7일 03시 00분


英 싱어송라이터 제이컵 콜리어

3월 중순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의 SXSW(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 뮤직 페스티벌에서 만난 영국 재즈 음악가 제이컵 콜리어. ‘재즈의 미래’란 찬사를 듣는 그는 “첫 앨범으로 그래미상을 타리라고는 예상 못 했다”며웃었다. 오스틴=임희윤 기자 imi@donga.com
3월 중순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의 SXSW(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 뮤직 페스티벌에서 만난 영국 재즈 음악가 제이컵 콜리어. ‘재즈의 미래’란 찬사를 듣는 그는 “첫 앨범으로 그래미상을 타리라고는 예상 못 했다”며웃었다. 오스틴=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임희윤 기자
임희윤 기자
“재즈의 새 메시아.”―영국 가디언지(紙)

“이런 재능은 내 생애 듣도 보도 못했다.”―퀸시 존스(고 마이클 잭슨 프로듀서)

올해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재즈 녹음이 이뤄진 지 100년 되는 해다. 디지털 스트리밍의 시대, 인터넷과 유튜브의 세계가 길고 복잡한 재즈 연주 시장을 죽이고 있다고들 한다.

콜리어의 앨범 ‘In My Room’ 표지. 실제 그의 방을 촬영한 사진이다.
콜리어의 앨범 ‘In My Room’ 표지. 실제 그의 방을 촬영한 사진이다.
여기 “내 생각은 반대”라고 외치는 젊은이가 있다. 영국 싱어송라이터 제이컵 콜리어(23)다. 그는 17세 때 유튜브에 올린 아카펠라와 연주 영상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귀여운 외모와 단단한 음악성을 겸비했지만, 그는 저스틴 비버처럼 팝스타의 길을 가는 대신 재즈를 택했다. 지난해 낸 데뷔앨범 ‘In My Room’으로 올해 그래미어워드(2월)에서 2개의 트로피를 받았다. 연주곡과 아카펠라 분야 최우수 편곡상, 악기와 보컬 분야 최우수 편곡상.

○ 나의 선생은 유튜브


최근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의 SXSW(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 뮤직 페스티벌에서 콜리어를 만났다. 그는 “1960년대 마일스 데이비스가 재즈를 혁신했듯 수많은 정보기술에 둘러싸인 우리 젊은 세대가 2017년에 다시 한 번 재즈를 혁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놀랍게도 “데뷔작은 나의 30m²짜리 방 안에서 모든 악기와 보컬을 혼자 연주하고 녹음해 만든 앨범”이라고 했다.

그는 음악가 집안에서 자랐다. 양친 모두 영국 왕립음악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콜리어의 진짜 선생은, 그러나 그가 12세 때 접한 유튜브다. “유튜브의 가장 큰 축복은 룰이 없다는 거예요. 놀이터죠. 뭔가를 만들면 허물없이 공유하도록 절 독려했죠.” 그는 자신의 앨범에 대해 “오랜 기간 유튜브 사용자들이 날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해 만들어진 작품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다른 사용자들이 들려준 인상적인 음악들이 제 안에 각인돼 쌓여 다시 저의 음악에 영향을 줬죠. 누군가는 5달러, 다른 이는 50달러어치의 재능을 제게 기부해주신 거나 다름없으니 감사드려요.”

○ MIT 연구팀과 만든 마법의 라이브

콜리어의 콘서트 장면. 그가 입으로 부른 선율이 건반의 화성에 따라 실시간으로 분화되며 스크린에 분신술처럼 표현된다.
콜리어의 콘서트 장면. 그가 입으로 부른 선율이 건반의 화성에 따라 실시간으로 분화되며 스크린에 분신술처럼 표현된다.
현장에서 본 콜리어의 콘서트는 천재성과 첨단기술이 결합한 마술쇼였다. 로봇 오페라 등을 연구하는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벤저민 블룸버그 연구팀이 콜리어와 손잡고 독점 개발한 ‘분신술 라이브’ 기술이 이를 가능케 했다.

무대엔 한 사람뿐인데 10여 명의 합창단과 밴드가 연주하는 듯했다. 콜리어가 무대에서 마이크에 불어넣는 멜로디는 그의 신시사이저와 실시간으로 연결된다. 그가 마이크에 ‘도’를 부르는 동시에 손으로 ‘도미솔시’를 짚으면 마치 네 명의 콜리어가 ‘도’ ‘미’ ‘솔’ ‘시’를 부르듯 합창으로 변한다. 무대 뒤 스크린에는 분신술이 영상으로 표현된다. 건반으로 짚은 음의 개수와 같은 ‘콜리어들’이 원래 콜리어의 몸체에서 분화돼 나란히 노래한다. 루프 스테이션(연주를 실시간으로 녹음해 반복 재생해주는 장치)을 이용해 콜리어는 혼자 건반, 베이스기타, 드럼, 기타를 동분서주하며 밴드 연주까지 다 해낸다.

그는 “악기 연습보다 중요한 건 상상력”이라고 했다. “제 음악은 ‘홈메이드 오케스트라’예요. 피아노, 드럼 등 몇 가지 악기를 깨친 뒤 자연스레 우쿨렐레, 만돌린, 부주키, 각종 타악기로 옮아갔죠. 저의 주된 악기는 바로 소리, 그 자체거든요.”

제2의 저스틴 비버가 될 기회를 마다하고 어려운 재즈의 길을 택한 이유는 뭘까. “재즈는 제게 언어와 같아요. 모든 음악을 아우르는 큰 우산. 퀸시는 제게 늘 ‘재즈는 팝 음악의 클래식’이라고 말하는데 맞는 말이에요.”

그는 이번 SXSW에서 ‘디지털 시대의 재즈’라는 콘퍼런스의 연사로도 참여했다. 다음 앨범도 ‘방구석 음반’이 될까. “이제 소셜미디어로 알게 된 아프리카 음악가들과 협업해볼 생각이에요. 소셜미디어는 세상의 불의와 편견에 맞서는 연합을 만들고 있어요. 저는 우리 세대의 이런 점이 정말 맘에 들어요.”

무엇보다 100년의 세월 동안 발전돼 온, 재즈만의 복잡다단한 화성. 이것이야말로 그의 유튜브 영상과 라이브 쇼를 가장 현대적이고 다채롭게 하는 최고의 무기가 되고 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싱어송라이터 제이컵 콜리어#sxsw#재즈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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