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성리학자 녹문 임성주는 여동생 임윤지당(1721∼1793)에게 경서와 역사서를 가르쳤다. 남편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문자를 익히기 시작한 강정일당(1772∼1832)은 오래지 않아 남편과 경서를 토론할 정도가 되었다. 강정일당은 임윤지당을 평생 흠모했다. 문집으로 각각 ‘윤지당유고’와 ‘정일당유고’가 전해진다.
전통 사회에서 문자를 해독하는 능력은 지배계층이 독점했다. 지배계층 안에서도 여성은 문자 생활과 독서에서 배제되었다. 14세기 영국의 연대기 작가 헨리 나이턴은 여성이 책을 읽는 것을 돼지가 진주를 품는 것에 비유했다. 조선에서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1563∼1589)처럼 문명(文名)을 떨치고 문집까지 간행된 여성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어깨너머로 어렵게 글동냥을 하여 익히더라도 뜻을 펼치기는 어려웠다.
근대에 들어와서도 여성과 독서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지지는 않았다. “여학생은 학교 밖 사회를 알아서는 안 된다는 법이 없다. 넓은 세상에서 엎어지고 일어나고 하는 크고 작은 인생살이, 눈물과 웃음, 진실과 거짓을 가르쳐주는 것은 교과서도 검은 칠판도 아니요, 문학과 사회과학 서적들이다.” 여성교양지 ‘신가정’ 1934년 10월호에 실린 팔봉 김기진의 글이다.
1936년 2월 27일 동아일보 ‘시감(時感)’란에 실린 글이 여성들에게 독서를 권면한다.
“정말로 사회생활로 들어가고자 할진댄 독서 생활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될 수 없는 것이올시다. 독서 생활만이 조선 여성의 정신적 생활의 양식이 될 것임은 여러분 자신이 더 잘 아실 줄 압니다.”
1946년 9월 2만622명 중 687명, 1948년 8월 2만4569명 가운데 2513명. 해당 시기 국립도서관 열람 인원 중 여성 열람자 수다. 1961년 한 해 국립도서관 열람자 31만7847명 중 여성은 5만6317명으로 5분의 1 정도였다. 여성의 교육 기회와 사회생활 기회가 드물던 현실이 이런 차이의 배경일 것이다.
2016년 하반기 한 인터넷서점 통계에서 40대까지는 전 연령대에서 여성 구매자 비중이 높았다. 특히 30, 40대 여성 구매자 비중은 남성의 2배였다. 몇 년째 이어지는 추세다. 사회 이슈에 적극 반응하여 관련 도서를 찾는 20대 여성 구매자도 남성보다 많았다. ‘독서 생활만이 한국 남성의 정신적 생활의 양식이 될 것임을 남성 자신이 더 잘 알아야 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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