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매년 이즈음 자주 듣게 되는 ‘동무생각’. 1922년 탄생한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이다. 대구 출신의 작곡가 박태준이 곡을 짓고 시인 이은상이 가사를 붙였다.
이 곡의 무대는 대구 중구 동산동에 있는 청라언덕이다. 경상감영에서 멀지 않은 곳, 대구 근대 거리의 한복판이다. 박태준은 1910년대 계성학교 학창 시절, 청라언덕 인근 신명여자학교의 한 학생을 좋아했다. 그 학생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지은 곡이 바로 ‘동무생각’이다.
청라(靑蘿)는 푸른 담쟁이를 말한다. 100여 년 전 이곳엔 푸른 담쟁이가 많이 자랐다. 그래서 청라언덕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 담쟁이를 심은 건 대구 지역의 의료 선교사들이었다. 청라언덕엔 근대기 선교사들이 살았던 주택 세 채가 남아 있다. 블레어 주택, 챔니스 주택, 스윗즈 주택. 선교사의 이름을 따서 이렇게 부른다. 모두 1910년경 붉은 벽돌로 지은 2층 집이다. 당시 미국에서 유행했던 주택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특히 스윗즈 주택이 더욱 눈길을 끈다. 붉은 벽돌 벽체에 기와지붕을 올렸기 때문이다. 서양식 가옥과 한옥을 절충한 것이다. 벽돌 사이 스테인드글라스도 인상적이다. 햇살이 비치면 색색으로 빛나는 유리창. 청라언덕은 이국적이고 단정하다.
여기 살았던 선교사들은 의료 활동에 헌신했다. 바로 옆 동산의료원 118년의 역사를 함께하며 대구 지역 근대 의료를 개척한 사람들이다. 주택의 정원엔 선교사와 가족들이 묻혀 있다. 1948년부터 1993년까지 45년 동안 동산의료원장을 지냈던 미국인 하워드 모펫도 이곳에서 영면 중이다. 그는 1993년 고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매년 한 차례 대구를 찾아 챔니스 주택에서 며칠씩 묵었다고 한다. 그러곤 2013년 세상을 떠나 청라언덕으로 영원히 돌아왔다.
고즈넉한 청라언덕. 대도시의 한복판에 이렇게 한적하고 아름다운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그 아름다움의 뿌리는 그리움일 것이다. 이국땅에서 무수한 생명을 구했던 의료 선교사들의 헌신, 작곡가 박태준의 풋풋한 청춘. 청라언덕을 걷노라면 선교사들의 흔적에 고개 숙여지고, ‘동무생각’을 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머지않아 백합이 활짝 핀다. 청라언덕은 이 봄에 참 잘 어울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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