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시 안목항(현 강릉항) 커피거리는 ‘해변=횟집’이라는 등식을 깼다. 동해의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진한 에스프레소의 맛과 향을 느끼는 여정은 이제 강릉을 찾는 이들에게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횟집과 조개구이집으로 가득한 시골 어촌이었다. 하지만 커피자판기 옆에 커피전문점이 하나둘씩 생기더니 현재 27곳이 성업 중이다. 입소문을 타면서 커피공장, 커피박물관에 이어 커피아카데미까지 생겨났다. 강릉은 2009년부터 커피축제를 열더니 어느새 ‘커피 도시’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커피축제를 주관하는 강릉문화재단의 송성진 부장은 “커피를 통해 강릉의 자연을 팔자는 전략이 적중해 축제가 성공했다”고 말했다.
○ 숨은 보석 찾기
국내 관광지를 얘기하면 수학여행이나 TV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된 곳만 연상하기가 십상이다. 수박 겉핥기식 명승고적과 자연환경 둘러보기가 경험의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국내는 더 볼 것이 없어 해외로 간다’는 이들도 적잖다. 하지만 이게 국내 관광의 전부일 수는 없다. 지역 어르신이 가이드로 참여하는 구도심 투어부터 울창한 숲 사이를 걷는 ‘힐링’ 오솔길, 한국에만 있는 비무장지대(DMZ)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이색적이고, 보석 같은 사연과 추억을 품고 있는 관광지가 적지 않다.
부산에서 청춘을 보낸 ‘이야기 할배(할매)’들과 부산 영도구와 중구 등 구도심을 돌아보는 ‘부산 원도심 스토리투어’는 올해 한국 관광 100선(選)으로 선정됐다. 이들에게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사연까지 각 명소에 얽힌 생생한 사연을 듣다 보면 영화 ‘국제시장’ 속 등장인물이 된 기분에 젖는다. 각 지역의 예술 공방과 마을 공동체가 참여한 생활 밀착형 관광도 경험할 수 있다. ‘진짜 부산’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는 양곡 창고를 리모델링한 갤러리와 카페가 모여 있다. 바로 ‘삼례문화예술촌’이다. 일제강점기 때 양곡을 수탈하기 위해 지어진 창고 7개가 미술관, 책공방, 디자인박물관, 책박물관, 문화카페 등으로 탈바꿈했다. 100여 년 전 원형을 그대로 살린 외관과 최신식의 세련된 인테리어가 어우러져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와 북면 두천리에 걸쳐 있는 울진 금강송 숲길에는 수령 200년을 훌쩍 넘긴 노송(老松) 8만여 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금강소나무 원시림 보존지역이다. 과거 보부상들이 울진 흥부장에서 안동 등 내륙 지방으로 이동할 때 넘나들었던 열두 고개가 있는 1, 2구역을 비롯해 600년이 넘는 대왕소나무가 있는 4구역 등이 특히 인기가 많다.
울산 태화강변을 따라 조성된 십리대숲은 대표적인 ‘힐링 로드’로 꼽힌다. 폭 20∼30m 규모의 대나무 숲이 약 10리(4km)에 걸쳐 자리 잡고 있다고 해서 ‘십리대숲’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전국 12대 생태관광지역 중 하나로 선정됐다. 일제강점기에 태화강 범람 피해를 막기 위해 주민들이 심은 대나무가 아직까지 남아서 역사가 됐다.
○ 정부·지자체 손잡다
비슷비슷한 관광 상품을 내걸고 경쟁하던 지방자치단체들도 손을 맞잡고 있다. 곳곳에 산재한 관광자원들을 관광객 동선에 맞게 연결시켜 장기 체류를 유도하자는 것이다. 지자체별 ‘점’ 단위 관광코스를 이어 ‘선’ 단위 연계로 전환하겠다는 발상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31일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사업을 책임지고 관리할 권역별 총괄기획자(PM)를 선정하고 활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을 최종 선정했다. 국내 관광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3, 4개의 지자체를 하나의 권역으로 묶어 이를 집중 발전시키는 프로젝트다.
선정된 테마는 △평화안보(인천 파주 수원 화성) △평창로드(평창 강릉 속초 정선) △선비문화(대구 안동 영주 문경) △섬과 바람(거제 통영 남해 부산) △해돋이 역사기행(울산 경주 포항) △남도 바닷길(여수 순천 보성 광양) △시간여행(전주 군산 부안 고창) △남도 맛 기행(광주 목포 담양 나주) △백제문화(대전 공주 부여 익산) △자연치유(단양 제천 충주 영월) 등이다. 황명선 문체부 관광정책실장은 “일본 광역관광주유(周遊)루트, 독일 로맨틱 가도, 노르웨이 국립관광도로처럼 여러 지역을 하나로 묶고 색다른 테마를 발굴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초자치단체들도 관광객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역사유적, 문화체험, 산해진미가 가득해 ‘남도 답사 1번지’로 불리는 전남 강진군이다. 올해를 ‘강진 방문의 해’로 정한 강진군은 다양한 관광자원을 활용해 연중 축제를 연다. 4월만 해도 개불&낙지축제(1∼2일), 전라병영 축성 600주년 기념 전라병영성 축제(21∼23일), 영랑문학제 및 세계모란문화축제(28∼30일)가 연이어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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