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이영준]두보를 읽으며 한국 인문학의 전통을 되새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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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전집 김만원 외 4인 지음 서울대출판문화원·2010년
두보전집 김만원 외 4인 지음 서울대출판문화원·2010년
이영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영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해외 인문학계 동향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솔깃할 소식이 있다. 최근 몇 년간 두보 시 전집이 여러 언어로 잇따라 번역됐다. 지난해 영역판 전집이 중국 시문학 연구 석학인 미국 하버드대 스티븐 오언 교수에 의해 완간됐다. 영문 전집 발간은 이 책이 처음이다. 일본에서는 한학자 스즈키 도라오가 번역한 전집이 있었는데 중국학 연구자인 요시카와 고지로의 유고를 정리한 두보 시 전집을 이와나미 서점에서 간행하기 시작해 작년에 7권까지 나왔다. 고단샤가 문고판 두보 시 전집 네 권을 낸 것도 지난해다. 2015년에는 프랑스어판 전집 첫 권이 나왔다. 세계적으로 두보 시 전집 출간 경쟁이 벌어진 듯한 형국이다.

한국이 빠질 수 없다. 두보 시 전집을 세계 최초로 완역한 나라가 다름 아닌 한국이다. 두시언해(杜詩諺解)가 발간된 것이 1481년 조선 성종 때다. 그렇게 500여 년 동안 두보 시 전집을 번역한 유일한 나라였던 한국에서도 요사이 다시 새로운 전집이 나오고 있다. 솔 출판사에서 전집 첫 권이 나온 게 1999년. 두 번째 책은 방송대 출판부에서 나왔고 3권부터는 서울대 출판부로 옮겨와 작년 말에 7권째 두보 전집을 냈다.

두보의 시 ‘등왕정자(藤王亭子)’에서 영감을 받아 조선 후기 문인화가 허필이 그린 ‘두보시의도(杜甫詩意圖)’. 동아일보DB
두보의 시 ‘등왕정자(藤王亭子)’에서 영감을 받아 조선 후기 문인화가 허필이 그린 ‘두보시의도(杜甫詩意圖)’. 동아일보DB
왜 두보의 시를 읽는 걸까. 조선 시인 권필은 “두보의 문장은 천하 으뜸이라 읽을 때마다 가슴이 트인다. 맑게 갠 하늘에 독수리가 날고 달 밝은 바다에 용이 무리지어 노닌다. 천 개의 봉우리를 넘으면 만 개의 봉우리가 나타난다”고 찬탄했다. 세종도 두보 읽기에 힘을 기울였다. 궁 안에 두보 시 전문가를 모셔 놓고 주석 작업을 하도록 했다. 이 작업을 토대로 나온 것이 성종 때 두시언해다. 조선시대 인문학의 성과는 두보를 읽기 위한 작업과 흐름을 같이했다. 송강 정철의 가사들도 두보의 시에 대한 공부 없이는 나올 수 없었다.

시를 읽는 까닭이 뭘까. 공자는 “시를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건 벽을 마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인문학의 본령은 타인이 말하는 의미를 알아듣는 것이다. 지난 100여 년 동안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두보 시를 읽는 일에 소홀했다. 우리 인문학의 전통이 무엇보다 깊이 뿌리내린 대상이 두보의 시였는데도 그랬다.

이제 새롭게 발간되는 두보 시 전집이 흐려진 맥을 이어내는 데 보탬이 되리라 생각한다. 번역을 맡은 학자들이 매주 모임을 갖기 시작한 게 벌써 20년째다. 그동안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존에 나온 책도 개정해 완간하면 세계 최고의 두보 시 전집 번역본을 만날 수 있을 거다.

두보의 시에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구절이 많다. ‘곡강(曲江)’ 첫머리에서 그는 봄에 대해 이렇게 썼다.

“한 조각 꽃잎이 떨어져도 봄빛은 줄어들거니/바람에 날리는 만 점 꽃잎은 정녕 사람을 시름겹게 하여라.”

언제나 가슴 열리게 하는 구절이다.
 
이영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두보전집#인문학#두보 곡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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