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1909∼1992)의 전집은 66권이지만 사실은 그의 원고를 다 담지 못한 선집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만큼 다작(多作)했다는 뜻이다. 보조원까지 두고 매일 400자 원고지 40∼80장을 집필한 그의 별명은 ‘인간 타자기’였다. 손에 경련 증세가 온 다음에도 구술하여 받아 적게 한 뒤 나중에 직접 고치는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소설 장편만 100편, 중·단편은 약 350편이다.
영국 작가 에드거 월리스(1875∼1932)는 서른 살부터 27년 동안 장편만 170권 넘게 발표했다. 초기 축음기인 왁스실린더에 구술 녹음한 뒤, 비서에게 타이핑을 맡기는 방식으로 작품 하나를 이틀 만에 탈고할 때도 있었다. 전화를 받은 비서가 “월리스 씨는 한창 집필 중”이라고 답하자 상대방이 “탈고할 때까지 전화 끊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다.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으로 유명한 알렉상드르 뒤마는 소설, 여행기, 수기(手記) 등 257편과 희곡 25편을 발표했다. 조병화는 시집 52권을 냈다. 고은의 저작은 160권이 넘는다. 2015년에 열린 국문학자 ‘김윤식 저서 특별전’에는 저서 147종이 전시되었다. “자신의 저서를 사서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그가 부럽다”는 얘기가 국문학계에 전해진다. 전설적인 다작의 반대편에 역시 전설적인 과작(寡作)이 있다.
마거릿 미첼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유일한 발표작이다. ‘앵무새 죽이기’의 작가 하퍼 리도 마찬가지였으나 세상을 떠나기 7개월 전 ‘파수꾼’이 출간됐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과작이 된 경우로 생전에 시집 한 권, 희곡 한 편, 소설 ‘육체의 악마’를 발표한 프랑스 작가 레몽 라디게(1903∼1923)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입 속의 검은 잎’이 나온 윤동주와 기형도가 있다.
다작과 과작은 어느 쪽이 좋고 나쁘다 말하기 어렵다.
작가 김연수의 말에 단서가 있다. “얼마만큼 많이 썼느냐가 아니라 소설을 생각하며 세 시간을 보냈느냐 아니냐로 글쓰기를 판단하니 결과적으로 나는 매일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됐다.”(‘소설가의 일’)
늘 작품을 생각하며 꾸준히 쓰는 게 관건이다. 과작인 작가도 미발표 원고가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에서 9초대 질주를 하기 위해 선수들은 4년간 꾸준히 달린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