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더 복잡하고 성숙한 나이가 되고 나니, 돈도 사랑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겠다. 사랑의 미덕을 제아무리 이상적으로 추어올려도 소설에서 사랑보다 중추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돈이다.” ―‘돈을 다시 생각한다’(마거릿 애트우드·민음사·2010년)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인권운동에 힘쓰는 활동가이기도 한 인물이 돈과 빚에 대해 이야기한다. 욕망 때문에 빚을 지고 마는 현대인을 비판하는, 뭔가 도덕적인 이야기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여든이 다 되어 가는 나이의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오히려 어릴 적 자신이 돈에 매료됐던 이야기로 말문을 튼다. 그리고 말한다. “(빚에는) 또 다른 태고의 내재적 초석이 있다고 가정한다…(중략)… 바로 ‘공평 감각’이다.” 인간이 돈을 빌리고 또 갚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어떤 일이 내게 공평한지를 따지는, ‘내가 널 돕는다면 너도 언젠간 나를 도와야 한다’는 식의 본능적 균형 감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얘기다.
인간이 채무 관계를 형성할 줄 안다는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나중에 빚을 받으려면 상호간에 벌어진 일을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 작가의 말을 인용한다면, “기억이 없으면 빚은 없다. 달리 말해 보겠다. 이야기가 없으면 빚은 없다.” 입학 때 학자금 대출을 받고 결혼할 때 전세 대출을 받는 주변의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빚을 지고 갚는 과정은 그 자체로 사람의 인생을 그리는 이야기가 된다.
작가는 이 채무 관계의 스토리텔링을 좀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하면 개인과 국가의 관계까지 포함할 수 있고, 좀 더 격렬하게 그린다면 복수의 서사가 된다는 점도 이야기한다. 이렇게 돈은 인간의 행동에 주요 동력으로 작용한다. 돈은, 그리고 채무 관계에는 사회를 움직이고 역사를 바꾸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국가 간의 채무 관계를 넘어 역사 청산의 문제까지 언급한 작가는 인간 대 자연의 채무 관계를 인식해야 한다고 경고하는 우화로 글을 마무리한다. 고대 이집트부터 현대사회까지, 동물의 생태부터 철학과 심리학까지 아우르는 작가의 내공과 필력을 느끼며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돈과 빚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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