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서점가에 몇 년 전만 해도 인기서적 코너에서 볼 수 없었던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출판전문지 ‘기획회의’가 지난해 꼽은 ‘2016 출판계 키워드 30’에서 ‘페미니즘’이 두 번째 키워드로 꼽힐 정도로 열풍이 불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페미니즘 도서 종류는 2015년 73종에서 지난해 114종으로 1년 새 2배 가까이로 늘었다. 페미니즘 서적 전년 대비 판매 증감률 역시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2016년 171.4%, 올해 1, 3월 기준 244%의 성장세다.
W.I.C(우먼 인 컬처)요원 에이전트 35(김정은)·에이전트 31(장선희)·에이전트 9(이지훈)는 궁금해졌다. 대체 왜 이 시점에 ‘페미니즘’이 대세인지를….
먼저 요원들은 페미니즘 책을 출간한 출판사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한결같이 “최근 몇 년 새 20, 30대 여성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서적 시장이 탄탄하게 형성돼 있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일상 속의 성차별’을 출간한 출판사 미메시스 관계자는 “대형 서점들이 출판계 페미니즘 시장 기류에 발맞춰 페미니즘 코너를 앞다퉈 마련하고 있다”며 “출판사 입장에선 크게 홍보를 하지 않아도 기대 이상의 판매액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20, 30대 여성들은 왜 페미니즘 책에 열광하는 걸까. 온라인 서점 YES24의 2016년과 2017년(1∼3월) 통계를 보면 모두 20대 여성이 각각 23.8%, 24.5%를 기록하며 가장 높은 구매율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20대 여성들이 페미니즘 열풍을 선도하게 된 계기로 2016년 5월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을 꼽았다. 여성을 상대로 한 ‘묻지 마 살인’으로 사회적 충격을 줬던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 불거진 여성혐오 논쟁이 페미니즘 도서 열풍을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정끝별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3포 세대가 생겨나며 소득의 불평등 및 사회적 갈등이 성(性)대결을 비롯한 세대 갈등으로 변화했다”며 “결국 계층 간 갈등이 성 갈등으로 비화하면서 극단화됐고, 여성들이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페미니즘 서적을 즐겨 읽는 대학원생 서미진 씨(25)의 말이다. “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논쟁이 이뤄지는데 일부에선 페미니즘을 ‘꼴펨’이라며 격하시켜 부른다. 논리적으로 대응하고 싶어 6개월 전부턴 친구 3명과 페미니즘 독서클럽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다른 이유는 없을까. 높아진 여성의 사회적 위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답을 찾는 의견도 있었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보상과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늘면서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이는 페미니즘의 대중화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요원들이 만난 대기업 입사 2년 차 윤지혜 씨(25)는 이러한 의견에 깊은 공감을 표했다. “남자 상사 중에 ‘여자 직원은 감정적이라 같이 일하기 피곤하다’ 등의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는 분이 있어요. 늘 불편했는데 조직생활 하려면 참아야지 하고 싫은 내색을 안 했죠. 그러다 최근 ‘82년생 김지영’이란 책을 읽고 펑펑 울었어요”
윤 씨 등의 사례를 들은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20, 30대 여성 직장인들은 대학에서 민주적인 교육을 받고 평생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우리 사회 조직들엔 아직 성차별적인 문화가 많아요. 수십 년간 배워온 성 평등과 능력주의라는 가치관이 사회생활 하며 뿌리째 흔들리는 거죠. 결국 자기 삶을 이해하기 위한 힐링도서로 페미니즘 서적을 찾게 되는 겁니다.” 흑….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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