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레스토랑’을 선정하는 리스트가 해마다 서점이나 신문, 온라인에서 발표된다. 국가마다 혹은 도시마다 발표하는 리스트만도 수없이 많으나 세계인이 공통적으로 신뢰하는 기준은 그리 많지 않다.
산펠레그리노와 아쿠아파나의 후원으로 매년 최고의 레스토랑 50곳을 발표하는 ‘월드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이로부터 파생된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이 2월 21일 태국 방콕에서 올해 50선을 발표했다. 아시아를 인도 대륙, 동남아 남부 및 북부, 홍콩·대만·마카오, 중국 본토와 한국, 일본 등 6개 구역으로 구분하고 구역별로 50여 명의 전문 평가단이 투표해 50곳의 레스토랑이 선정된다. 이번이 5회째로, 영광의 1위는 방콕의 ‘가간’ 레스토랑의 가간 아난드 셰프에게 돌아갔다.
올해 ‘월드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 1위 수상자 가간 아난드 셰프.
가간 아난드 셰프가 3년 연속 1위를 수상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클래식과 혁신적인 요리 사이의 균형은 어떠할까. 꾸준한 곳은 어디며 신흥강자는 누구일까. 이러한 질문으로 리스트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50곳의 스타 탄생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내 깨닫게 된다. 일찍이 아시아 시장으로 건너와 자국의 클래식 요리문화를 제대로 선보이기 위해 애쓰는 프랑스·이탈리아인 셰프들, 해외에서 요리를 수련하고 돌아와 현지의 재료와 식문화를 접목시켜 새로운 경계를 선보이는 아시안 셰프들. 이들의 혼재는 교류와 융합이 왕성한, 그래서 더욱 절대 순위를 매기기 어려운 아시아 미식 시장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하나의 지표와도 같다.
시상식에서 만난 셰프들은 한결같이 “순위는 중요하지 않아요. 취향의 차이일 뿐,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구자들이죠.” “모두가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는 개척자들이죠. 이곳에 와서 서로가 연결되는 것, 서로 알아가는 것이 즐겁습니다”라며 순위보다는 인정받았다는 것에 기쁨을 표현했다.
가간 아난드 셰프의 요리. 바앤다이닝·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제공수상의 기쁨 못지않게 ‘교류’와 ‘연결’에 의미를 두고 있는 셰프들처럼 에디터도 매해 조금씩 색다른 ‘아시아의 미식 변주곡’을 감상하는 데에 의미를 두고 취재했다. 2020년 즈음에는 중국에서 한식 레스토랑이 선정되고 일본에서는 인도식 레스토랑이 출현하는 진정한 다양성을 상상하면서, 나아가 아시아에서도 제2의 ‘노마’가 발견되기를 기대하면서 이번 2017년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시상식에서 만난 영광의 주인공 중 주목할 셰프 5인의 인터뷰를 담았다. 이번 회와 다음 회 두 차례에 걸쳐 2명, 3명씩 나눠 소개한다.
2015년,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3년 연속 1위 자리에 오른 방콕의 가간 아난드는 ‘풍부한 상상력과 요리에 불어넣은 위트가 언제나 흥미롭고, 아이디어가 곧 맛있는 메뉴로 발현된다’는 평가가 따른다. 인도 콜카타 출신인 가간 아난드 셰프는 자신의 뿌리이자 고향인 인도의 스트리트 푸드에 분자 요리 기술을 접목해 혁신적인 인도 요리를 선보인다.
가간 아난드 셰프의 메뉴판. 바앤다이닝·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제공최근 그의 요리는 아무런 글자 없이 25개의 이모지(디지털 그림문자)를 나열한 메뉴판으로 시작된다. 인도 향신료와 시트러스로 만든 상큼한 레몬주로 입맛을 돋우더니 칠리로 채운 초콜릿 봉봉, 훗카이도산 우니로 채운 소프트 아이스크림 콘, 눈처럼 내려앉은 코코넛 가루의 디저트까지 다채로운 식감과 인도의 향신료가 입안 곳곳에서 터지며 지루할 틈 없는 25가지 코스가 한입 크기 요리로 이어진다.
식사를 마칠 때면 이모지와 요리 이름이 함께 적혀 있는 일반 메뉴판을 보여주는데, 요리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오로지 맛으로만 승부를 보기 위한 셰프의 의도다. ―1위 수상을 축하한다. 3년 연속인데 소감은.
“점점 책임감도 느끼고, 더 좋기도 하고, 벌써 3년이라니 빠르면서도 무지 기쁘다.” ―3년 연속 왕좌를 쓰게 된 비결이랄까,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간단하다. 요리와 서비스에 대한 혁신. 그리고 가식적이거나 허세 부리지 않는 것.”
―기술적인 면에서 요리의 완성도를 잃지 않으면서도 ‘펀(FUN) 다이닝’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완전히 공감한다. 이모지로만 만든 메뉴판을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메뉴판에 사용된 각 이모지는 해당 요리에 대한 느낌이랄까, 해당 요리를 정서적으로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다른 레스토랑의 25코스 요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일 것이다. 전체 코스를 2시간 내에 먹어야 하는데 한 요리당 먹는 데 주어진 시간은 평균 5분꼴이다. 그중 22코스는 손으로 먹어야 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메뉴 창조를 위한 영감은 어디서 받나.
“삶, 여행, 다양한 문화. 특히 인도는 내게 기술과 맛을 선사했다. 일본은 내게 예술적 영감을 주고 있다.”
―맛의 밸런스를 위한 기준은 무엇인가.
“5가지 ‘S’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단맛(Sweet), 신맛(Sour), 짠맛(Salty), 향신료(Spice), 놀라움(Surprise)이 그것이다.”
―혁신을 시도하는 만큼, 어려움이나 문제도 많을 것 같다.
“매일 가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다. 손님들의 기대감을 직면하는 것은 더 큰 도전이고.”
―2020년 가간의 문을 닫고 일본에서 제2막을 열겠다고 발표했다.
“모든 것은 끝이 있어야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경주용 말과 같다. 말은 경쟁을 좋아하고 조금 더 빨리 달리려는 도전을 좋아한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나는 이미 해온 방식으로 다소 편안하게 살거나 명성을 누리면서 살기는 평생 어려울 것 같다.”
―앞으로 선보이고 싶은 요리는 무엇인가.
“아직 결정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다. 가능한 단순하게, 과한 것보다 모자란 게 낫다는 말처럼.”
―나만의 요리를 만들고자 하는 젊은 셰프에게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은.
명예를 추구하며 달리지 말고 요리를 하라. ‘요리’가 진짜 영웅이지 ‘셰프’가 영웅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라. 손님들이 영웅을 결정하도록 하라.
2위 수상자 안드레 치앙 셰프. 바앤다이닝·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제공올해의 2위는 1위의 영예 못지않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7세에 프랑스로 떠나 요리 인생을 시작한 이후 다시 17년이 지나 싱가포르로 돌아와 자신의 레스토랑을 오픈한 대만 남자, 안드레 치앙 셰프가 그 주인공이다.
2010년 싱가포르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 안드레’를 오픈한 이후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1회부터 5위에 랭크되며 이후 6, 4, 3위를 거쳐 올해 2위에 올라섰다.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의 ‘빈초’ ‘번트 엔즈’, 파리의 ‘포르테12’, 타이베이의 ‘로’ 등 다양한 레스토랑을 오픈하며 멈추지 않는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오랜 기간 준비된 셰프다.
안드레 치앙 셰프가 선보인 요리. 바앤다이닝·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제공―이번에 2위를 수상했다. 소감은.
“너무 행복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옳은 것을 추구해 왔다’는 것이다. 레스토랑 안드레는 싱가포르 차이나타운의 아주 작은 모퉁이 가게에 불과하다. 싱가포르는 레스토랑에 대한 소문과 평가가 무성한 곳이다. 그 속에서 왜소한 외형을 넘어 실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그만큼 열심히 일했다. 인기를 얻기보다는 우리가 만드는 요리 자체와 퀄리티의 일관성에 집중해 왔고, 이런 노력이 지금의 영광으로 이어진 것 같다.”
―총 3개의 트로피를 가져갔다. 비결이 뭘까.
“글쎄, 비결이라면 팀을 믿는 것이다. 내 의견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이디어와 의견에 귀 기울이며 서로 믿는 팀워크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또한 레스토랑은 저마다 아이덴티티가 있어야 한다. 어디를 카피할 것이 아니라 고유한 특색이 있어야 한다. 이는 레스토랑과 손님들을 연결시키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보자. 대체로 사람들은 대만 퀴진, 대만 스타일에 대해서 잘 모른다. 하지만 어느 대만 레스토랑에서 분명한 아이덴티티를 경험한 사람들은 ‘아, 대만 문화를 이제 알겠어’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레스토랑이 아이덴티티를 갖추는 것은 하나의 의무와도 같다.”
안드레 치앙 셰프가 선보인 요리. 바앤다이닝·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제공―17세에 프랑스로 건너가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인 ‘르 자르뎅 데 상’을 시작으로 무려 15년 동안 수많은 레전드급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지대한 영향을 준 셰프가 있다면 누구인가.
“레스토랑마다 다양한 영향을 받았다. 르 자르뎅 데 상에서는 재료에 눈을 뜨며 남부 프랑스 문화, 자발적으로 메뉴를 생산하는 법을 배웠고, ‘피에르 가니에르’에서는 창조,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법, 가능성에 대해 배웠다. ‘라틀리에 드 조엘 로부숑’은 일관성, 기준, 체계화를, ‘라 메종트루아그로스’는 한 접시에 5가지 식재료라는 규칙을 알려줬다.
―나만의 요리를 만들고자 하는 젊은 셰프에게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은.
“누구나 자신의 요리와 레스토랑이 오래도록 사랑받길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퀴진(Cuisine), 창의력(Creativity), 일관성(Consistency), 이 ‘3C’를 기억하라. 퀴진은 역사와 문화다. 어디서도 비롯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요리만 배울 것이 아니라 시간을 가지고 역사와 문화도 배워라. 사람들이 어떻게 먹는지, 무엇을 즐기는지,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지켜봐야 한다. 창의력은 퀴진을 매우 깊이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감자 요리를 10번 했다면 어떻게 조리할지 매우 제한적으로밖에 모르는 상태다. 하지만 10년간 매일 요리한다면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시간을 가지고 연습하라. 일관성은 연습이다. 역시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한곳에서 충분한 기간을 두고 일하며 그곳 문화와 사람들, 재료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 역시 첫 직장에서 9년을 일했고, 현재 ‘레스토랑 안드레’의 헤드 셰프와 수 셰프도 함께 일한 것이 13년, 9년째다. 모든 것이 시간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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