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름한 소파, 약간은 퀴퀴한 책 냄새, 사방을 꽉 채운 만화책들…. 5분이면 충분히 먹고 볼 텐데, 왜 그땐 그 시간이 그렇게 아까워 만화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짜장면을 먹었을까요. 그 옛날 500원이면 하루 종일 마음대로 볼 수 있었던 만화방은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요. 》
만화방과 만화카페
“만화방을 연 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 인테리어를 한 번도 못 바꿨어요. 손님들이 대부분 40대 이상이라 그런지 인테리어를 바꾸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더라고요. 옛날 만화방 분위기가 좋다면서요. 조명도 살짝 어둡고 소파도 낡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만화책 보다가 짜장면 시켜 먹는 맛이 그렇게 좋다고 하네요.”―이모 씨(40·서울 관악구 만화방 사장)
“만화방에는 유명한 작품이 아닌 일간 만화(평균 하루에 한 권씩 나온다 해서 붙여진 이름)를 보러 오는 손님도 많습니다. 일간 만화는 연재가 빨라 주로 완결된 세트로 비치돼 있어 단숨에 읽기 좋거든요. 일본 만화책과 달리 책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기니 중년들에게 더 익숙하기도 하고요.”―김모 씨(40·은평구 만화방 사장)
“어렸을 때 갔던 만화방을 떠올리면 담배 냄새 가득한 퀴퀴한 지하 공간이 생각납니다. 만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만화방엔 무서운 형이나 아저씨들이 많아 무섭기도 했죠. 요즘 만화방 대신 생기고 있는 만화카페는 조명이 밝고 인테리어도 소파가 아닌 1인실, 2인실 등 개인 공간으로 꾸며져 있어 젊은 사람들이 좋아해요.”―김민정 씨(26·취업준비생)
“만화카페는 굳이 만화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커플이나 학생이 가볍게 만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에요. 음료와 같이 즐기는 카페 형식이라 만화책 수도 만화방의 10% 수준이고 유명한 웹툰 만화책 위주로 가져다 놓습니다.”―박정은 씨(40·클럽보다 만화 점장)
“1990년대에 2만 개 이상이던 만화방이 지금은 500개 이하로 줄었어요. 만화카페까지 포함하면 700개 정도 되죠. 다른 산업이었다면 이미 끝났을 시장 규모입니다. 그래도 만화방이 유지되는 건 매출이 적어도 만화가 좋아 만화방을 운영하는 사업자들이 많아서예요. 주 소비자인 중년들도 추억 때문인지 충성도가 강하기도 하고요.”―주재국 씨(46·전국만화방연합회 창립자)
만화방 이용 꿀팁
“만화방에 들어가면 신간 코너를 우선 둘러봅니다. 그럼 이 만화방이 내 스타일과 맞는 곳인지 금방 파악할 수 있지요. 신간 코너에 제일 많이 있는 장르는 만화방 주인이 좋아하고 만화방에 제일 많이 두는 장르예요. 만화방 주인과 취향이 비슷하면 만화 추천받기도 쉽고 숨겨진 명작을 찾을 확률도 높습니다.”―황재오 씨(42·드림커머스 대표)
“만화방은 시간당 비용을 내고 이용하니까 짧은 시간에 마지막 권까지 볼 수 있는 만화를 고릅니다. 아무 생각 없이 훅훅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스포츠나 코미디 장르도 좋죠. 만화 ‘데스노트’ 같이 스토리가 복잡하거나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들은 만화방에서 빌려서 집에서 보는 편이에요.”―유찬 씨(27·대학원생)
“요즘은 만화방들도 SNS를 운영해요. 이걸 팔로하면 좋습니다. 우선 매일 어느 만화방에 어떤 신간이 들어왔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어요. 번거롭게 직접 가서 신간 들어왔느냐고 물어보지 않아도 되죠. 이벤트 공지도 받아볼 수 있어요. 작년 여름에 밤샘 이벤트라고 해서 야간에 가격 할인해 주는 만화방이 있었는데 SNS 아니었으면 기회를 놓칠 뻔했어요.”―김상희 씨(38·만화평론가)
‘아재’들 추억 속의 만화방
“1970년대와 1980년대엔 만화방이 붐이었습니다. 부모님도 만화방을 하셨어요. 만화방에 어울리는 음식으로 다들 짜장면을 꼽는데 진짜 인기 있었던 건 꽈배기나 튀김이죠. 부모님도 만화방에서 꽈배기를 튀겨 학생들에게 팔았어요. 애들이 꽈배기 먹고 손을 제대로 안 닦고 만화책을 넘기니 책이 온통 얼룩덜룩 기름투성이였죠.”―안정오 씨(59·자동차 영업)
“최초의 만화방은 공터였습니다. 6·25전쟁 이후부터 만화가 책으로 묶여 나오기 시작했는데 딱지 만화라고 부르는 20쪽 정도의 작고 얇은 책이었죠. 공터에 딱지 만화를 진열해 놓으면 학생들이 돈을 내고 땅바닥에 털썩 앉아 만화책을 봤어요. 전쟁이 끝난 후엔 출판사가 많았던 서울 아현동 중심으로 만화방이 많이 생겼습니다.”―박기준 씨(79·만화영상박물관 자문위원)
“1990년대 중반에 PC방이 생기면서 만화방에 진득하게 앉아 만화를 보는 사람은 확 줄었어요. 그 대신 출퇴근길이나 등하교 때처럼 자투리 시간에 만화를 보는 사람이 늘었죠. 만화방들 중엔 이런 변화에 맞춰 만화책을 빌려주는 대여점 형태로 영업 방식을 바꾼 곳도 많습니다.”―박석환 씨(45·만화평론가)
인터넷 만화방, 웹툰으로 진화
“인터넷 만화방은 만화책 전체를 스캔해서 인터넷에 올린 뒤 마우스로 책장을 넘기며 보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한 장면씩 스크롤을 내리며 보는 웹툰과는 다르죠. 한 화면에서 한 페이지를 다 볼 수 있어 실제로 만화책을 넘기는 것처럼 볼 수 있습니다.”―이재식 씨(46·씨엔씨 레볼루션 대표)
“웹툰이 생기고 나선 내가 있는 모든 장소가 만화방이에요. 지하철에서든 방에서든 휴대전화만 있으면 언제든지 만화를 볼 수 있죠. 요즘 웹툰은 오감을 자극하는 시도들이 많아서 만화방에서 보는 거보다 실감나게 즐길 수 있기도 해요. ‘2016 비명’이라는 웹툰은 중간에 비명을 넣거나 움직이는 화면을 넣어 일반 웹툰보다 자극이 셌죠.”―박정훈 씨(29·대학생)
“웹툰 작가에게 인터넷은 독자와 이야기하는 대담 장소 같은 곳이에요. 독자들이 제 작품을 보면서 댓글로 바로 피드백을 합니다. 생각보다 댓글이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지요. 스토리 전개가 지루하다는 댓글이 많이 달리면 조금 속도를 내서 박진감을 높이기도 하고. 작품 연재하는 데 지칠 때마다 재미있다는 댓글을 보며 힘을 내기도 합니다.”―전선욱 씨(29·웹툰 프리드로우 작가)
온몸으로 즐기는 만화
“태권브이 4D 상영관에선 태권브이에 앉아 있는 시점으로 악당과 싸우는 만화를 보여 줍니다. 장면에 따라 의자가 움직여 실제로 타고 있는 느낌이 들죠. 아이보다 어른들이 더 좋아합니다. 어릴 때 태권브이를 조종하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야 그 꿈을 이뤘다고 하는 분도 많았어요.”―남민우 씨(34·브이센터 마케팅커뮤니케이션 과장)
“애니메이션센터에선 아이들이 직접 만화를 만듭니다. 찰흙으로 캐릭터를 만들고 본인이 짠 시나리오에 맞춰 찰흙 캐릭터 사진을 여러 장 찍죠. 그 사진들을 이어 붙이면 한 편의 스톱모션(연속 촬영 사진을 이어 붙여 영상으로 만드는 만화)이 됩니다. SNS에 공유해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재미도 쏠쏠하대요.”―이혜영 씨(27·서울 애니메이션센터 애니타운팀 선임)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 서울코믹월드에서 매달 둘째 셋째 일요일마다 코스프레 모임을 하고 있어요. 이곳에 오시면 평소 좋아하는 캐릭터를 찾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실제 만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재미를 느낄 거예요. 사람들이 같이 사진 찍어달라고 할 때 진짜 만화 캐릭터가 된 거 같아 기분이 좋아요.”―김수빈 씨(16·고등학생)
“서울 명동역 만화의 거리 ‘삼박자 만화공방’에서 종종 만화를 그려요. 내가 그린 만화를 웹툰처럼 인터넷에 올리거나 직접 프린트해서 만화책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전 요즘 직장 상사 때문에 너무 힘들어 복권 맞고 퇴사하는 장면을 그렸는데 상상으로나마 스트레스를 조금은 풀 수 있어 좋았습니다.”―박정권 씨(31·유통업체 근무)
“1970년대에 만화방 다니셨던 분이라면 청계천 판자촌 체험관으로 오세요. ‘또리 만화방’이라고 낡은 의자와 옛 만화 포스터까지 세밀하게 당시 만화방을 재현한 곳이 있습니다. 1970년대 교복도 빌릴 수 있으니 교복 입고 만화방에 앉아 옛 추억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이권주 씨(51·서울시설관리공단 팀장) 오피니언팀 종합·전우철 인턴기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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