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말소 주역 신낙균 선생
당시 동아일보 사진과장 재직… 별세 62년만에 유해 옮겨 안장
“사진은 단순히 기념이나 오락이 아니다. 사진의 앵글에 따라 국가의 안위가 바뀔 수도 있다.”
신문영 운정재단 사무총장(69)이 기억하는 할아버지 신낙균 선생(1899∼1955)의 굳은 신념이자 의지다. 신 선생은 동아일보 사진과장이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생(1912∼2002)의 사진 속 일장기를 지우고 신문에 실은 주역 중 한 명이다.
그해 8월 25일 동아일보는 2면에 일장기가 삭제된 손 선생의 사진과 함께 금메달 소식을 전했다. 이는 민족의 희망과 자존심을 회복시키고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였다. 그러나 신 선생 등 7명은 일본 경찰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했다. 선생은 40일 만에 풀려났지만 사진과 관련된 일체의 활동이 금지됐다. 선생은 지방을 전전하다 광복 후 경기 수원시 수원북중에서 화학교사로 근무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한국 독립운동사와 언론사에 한 획을 그은 신 선생은 별세한 지 62년 만인 7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 잠들었다. 별세 직후 수원북중 인근에 묻힌 선생의 유해는 1972년 안성시 선산으로 옮겨졌다. 그렇게 40년 넘게 안성에 있다가 국가보훈처의 지원으로 이번에 현충원으로 옮겨졌다.
신 선생의 유해는 이날 현충원 충혼당 320호에 안장됐다. 선생의 부인인 오숙근 씨의 유해도 함께 안장됐다. 신 사무총장은 “사진을 전문으로 하신 분 중에서는 유일하게 국립묘지에 애국지사로 안장된 것”이라며 “사진 역사에서도 전례가 드문 일이기 때문에 더욱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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