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66>평화를 뒤흔드는 침입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1일 03시 00분


프란시스코 고야, ‘돈 마누엘 오소리오의 초상’
프란시스코 고야, ‘돈 마누엘 오소리오의 초상’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는 인간 내면을 집요하게 추적한 미술가입니다. 특히 화가는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의 변덕과 독선, 허영과 광기를 미술로 고발했지요.

성직자와 정치가, 지배자와 민중 등 화가의 칼날은 여러 군데를 동시에 겨누었습니다. 묵직한 예술로 인간의 보편적 약점을 들춰내는 데 집중했지요. 하지만 예외를 둔 존재가 있었습니다. 바로 아이들입니다. 화가는 어린이들을 순진무구한 존재로 간주했습니다. 장난감과 애완동물에 둘러싸여 행복해하는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아이들을 자주 그렸어요.

‘돈 마누엘 오소리오 만리케 데 수니가의 초상화’가 대표적입니다. 초상화 주인공은 후원자였던 백작 아들로 이른 나이에 사망했지요. 그래서 그림은 안타까운 소년의 죽음을 추모할 목적으로 제작되었다고 추측되기도 합니다. 얼마 후 맞닥뜨릴 비극적 운명을 예감하지 못한 채 그림 속 아이는 자그마한 두 발로 서 있습니다. 앙증맞은 곱슬머리 소년은 애완용 새들과 함께 놀기를 즐겼던 모양입니다. 아이 주위로 줄에 묶인 까치와 여러 마리 새들이 있는 새장이 눈에 띕니다. 그런데 평화로운 소년 뒤 어둠 속에는 또 다른 동물, 세 마리 고양이도 있습니다.

고양이는 미술가들이 오랫동안 즐겨 그려온 동물입니다. 다만 의미는 극단적입니다. 이집트 미술에서 고양이는 신성한 동물이지만, 중세 미술에서는 악마적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화가 초상화 속 고양이들은 어느 쪽일까요. 소년의 사랑스러운 친구, 애완용 동물일까요. 아이를 공격할 적당한 시기를 호시탐탐 노리는 잔인한 침입자일까요. 후자입니다. 화가는 인간의 추악함을 다룬 판화에서 난폭하고, 음흉하고, 공격적인 고양이들을 사악함과 교활함의 상징으로 일관되게 그려 왔거든요.

봄볕이 따뜻했던 요 며칠, 놀이터로 정신없이 쏘다니던 막내가 집 밖으로 나갈 생각을 접었습니다. 옆 동네에서 벌어진 동갑내기 죽음 소식에 겁을 먹은 모양입니다. 게다가 몹쓸 짓을 한 장본인이 큰언니 또래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도 큰 듯했습니다. 아이는 더 이상 엄마와 연락 가능한 휴대전화도 놀이터 인근의 감시카메라도 신뢰하지 않습니다. 놀이기구와 친구들이 있는 불안한 진짜 세상 대신 모니터 속 안전한 가상 세계를 선택한 아이를 보며 착잡했던 때문이었겠지요. 수업 시간, 화가 그림을 소개하다가 천진난만한 소년을 노리는 섬뜩한 고양이 떼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프란시스코 고야#돈 마누엘 오소리오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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