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때엔 금강산 관광이 유행이었다. 학생들의 수학여행도 많았다. 금강산 가는 길을 안내하는 지도나 홍보물이 지금도 많이 전해올 정도다. 서울에서 금강산을 가려면 경원선을 타고 연천역, 신탄리역을 지나 철원역에서 내려 금강산 가는 열차로 갈아탔다. 경기도 연천은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우리나라 초창기 열차는 증기기관차였다. 물을 뜨겁게 데워 수증기의 압력으로 피스톤을 움직이고 그 힘으로 바퀴를 돌렸던 증기기관차.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었다. 물이 떨어지면 증기기관차를 운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차역에는 물을 공급하는 시설이 있었다.
경원선 열차는 연천역에서 물을 공급받았다. 연천역에 가면 지금도 일제강점기 때 사용했던 급수탑이 남아 있다. 높이 15m의 콘크리트 구조물인 연천역 급수탑은 1914년에 생겼다. 연천역은 서울과 원산을 오갔던 경원선의 중간쯤이다. 열차가 굉음을 토해내며 숨 가쁘게 역에 들어서면 급수탑을 통해 기관차 뒤에 달린 탄수차(炭水車)에 열심히 물을 공급했다. 연천역 급수탑에는 최대 100t까지 물을 저장하는 물탱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당시 열차에 물을 공급하는 동안 연천 사람들은 그 모습을 신기한 듯 구경하곤 했다. 승객들도 잠시 열차에서 내렸다. 그 사이 연천역에는 자연스레 물물교환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들은 금강산 얘기도 주고받았을 것이다. 흥미로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급수탑은 1950년대 디젤기관차가 등장하면서 그 기능이 멈춰버렸지만 증기기관차 시대에는 철도교통의 필수 시설이었다. 연천역뿐만 아니라 강원 도계역, 충북 추풍령역, 충남 연산역, 경북 안동역, 경북 영천역, 경남 삼랑진역에도 급수탑이 남아 있다. 연천역의 여러 건물은 6·25전쟁 때 폭격으로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급수탑만은 원형대로 잘 남아 있다. 급수탑 옆 기계실 건물을 보면 외벽 곳곳에서 총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전쟁의 상흔이다.
1914년 개통되어 서울에서 원산까지 달렸던 경원선 철도. 하지만 지금은 길이 끊겼다. 금강산 가는 길도 막혔다. 서울역에서 연천역을 거쳐 철원 백마고지역까지 운행하는 평화열차(DMZ 안보관광열차)가 다닐 뿐이다. 이즈음 신록의 계절이 되면 연천역 급수탑은 온통 초록이다. 담쟁이넝쿨이 급수탑을 친친 휘감아 올라간다. 그 모습이 금강산을 향한 지독한 그리움 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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