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진 찍기란 힘들다. 피사체가 유명인이건 보통사람이건 어렵다. 많은 이유가 있다. 피사체의 ‘무게’를 재야 하고 특징을 찾아내야 하며 본연의 모습이 어느 때 나오는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피사체를 이해하려는 사진가의 진정성이 전해져야 한다. 그래야 피사체는 마음의 문을 연다. 제대로 된 사진이 나오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인내하는 과정을 거쳐 찍은 사진은 대개 ‘작업의 주체’인 사진가와 피사체를 만족시킨다. 한사코 사진 찍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 게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일’이란 걸 부정하거나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각가 최종태 선생을 찍었던 경험은 ‘마음이 높은 마음을 만난’ 일이었다. 앞의 마음과 뒤의 마음이 다를 리 없겠지만 내가 만난 건 ‘높은 마음’이었다. 최 선생을 찍는 것은 앞서 언급한 내 나름의 인물사진 찍는 방식이 필요 없는 일이었다. 그는 항상 열려 있었기에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면 됐고, 찍기 위해 내 자신을 가다듬어야 했다. 깊고 넓은 그의 마음에 들어갔다 오면 내 마음도 잠시나마 커졌고, 깊어졌다.
최 선생을 찍었던 장소는 서울 연희동 자택이었다. 200m² 남짓한 작업실에는 60년도 넘은 그의 ‘마음들’이 모여 있었다. 선생은 자신이 만든 작품(형태)에 대해 “나는 항상 유동하지만 형태(조각)는 끝나면 그 자리에서 고정되기”에 “내 삶을 가장 구체적으로 표증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을 거쳐 선생의 마음으로 나타난 형태(조각)들은 맑은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선생을 찍었던 이유는 ‘마음이 가장 좋은 카메라’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좋은 카메라가 되기 위해서는 묻은 때를 닦아내야만 했는데 선생은 ‘맑은 물’이었다. 그를 찍은 것은 주로 서너 시간밖에 못 잔 숙직 근무 뒤였다. ‘피곤한데 제대로 찍을 수 있을까’란 염려는 촬영 후 몸이 더 가뿐해지는 걸 느끼면서 다음 촬영에 대한 기대로 변하곤 했다.
선생은 2007년 펴낸 ‘최종태 조각 1991∼2007’이란 책에서 부제를 ‘구도(求道)의 길에 세운 선(善)의 모뉴망’이라 달았다. 그가 낳은 형태는 전국의 많은 성당에 걸려 있다. 사진은 연희동 작업실에서 찍은 것으로 형태를 위해 지금도 고민하는 선생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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