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이룩한 성과를 기념하려면 건축물이 아니라 추상적인 사고의 힘을 기려야 한다…(중략)…탑과 성전은 군주의 사치품이다.” ―‘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펭귄클래식코리아·2014년)
한국 거리를 걷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탑’과 ‘성전’을 마주친다. 공공장소는 물론 일정 규모 이상의 빌딩 앞에는 어김없이 기념조형물이 서 있다. 아쉽게도 이들 대부분은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어렵다.
1817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교직을 한 지식인이었다. 그러다 돌연 1845년 3월 월든 숲 호숫가로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았다. ‘월든’은 그가 2년 2개월 2일 동안 지낸 월든 호숫가에서의 생활기이다.
책은 단순히 ‘어떻게 홀로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기록만 담고 있지 않다. 한 발짝 물러서서 지켜본 인간과 문명에 대한 관찰기다. 또 욕심에 얽매인 세상사의 어리석음에 대한 통렬한 비판서이다. 그는 책에서 “이 나라가 외관이 호화로운 저택에 상응하는 만큼 내적으로도 화려하고 인격적인 문화(human culture)를 아직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는 주저하게 된다”며 애통해 한다.
이 구절을 접하며 한국의 몇몇 거대 조형물들이 떠올랐다. 한강 인근에 설치된 ‘괴물’,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 설치된 ‘평화의 발’, 강남 코엑스 앞에 만든 ‘강남스타일’ 춤을 추는 손목 형상 등이다.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를 기념하고, 나라를 지키다 다리를 잃은 장병들의 희생을 기리고, 세계적인 인기를 끈 K팝을 관광 콘텐츠화하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런 의도를 헤아리기엔, 수억 원의 세금을 쏟아 부어 만들었다고 보기엔 너무 조악하고 흉물스럽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이들 조형물이 적잖은 이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상(偶像)은 글자 그대로 영혼 없는 허수아비다. 외형만 화려한 탑과 성전은 그 사회의 사고(思考)가 얼마나 빈약한지 보여주는 부끄러운 척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