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울 뒤피(1877∼1953)는 동시대 미술과 다각적 인연을 맺은 미술가였습니다. 인상주의와 상징주의, 야수파와 입체파 등에서 두루 영향을 받았지요. 동시에 순수미술과 장식미술을 열정적으로 넘나들 만큼 활동 영역도 광범위했어요.
화가의 삶과 예술은 잿빛이 드리운 푸른 바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미술가는 프랑스 북부 항구도시 르아브르에서 태어나 활기찬 뱃사람들과 함께 성장했어요. 또한 예술적 상상력을 키웠던 이곳에서 노르망디 바닷가 도시를 전위미술의 중심지로 만들고자 뭉친 6명의 열성적 소장자들의 후원을 받기도 했지요.
화가의 미술은 청각적 요소가 강합니다. 특유의 붓질과 색채로 화면에 빠른 템포와 경쾌한 리듬을 더하고자 했거든요. 음악 애호가였던 가족 영향이 컸습니다. 미술가 아버지는 생업과 별개로 교회 오르간 연주자이자 성가대 지휘자로 활동했습니다. 동생도 플루트 연주자였어요. 그 덕분에 연주 무대를 접할 기회가 많았던 화가는 특별한 예술적 시도를 감행했습니다. 악기의 개성적 음색을 별, 클로버 등 특정한 형태로 시각화하려 했지요. 악보 위 음표 하나하나를 하얀색과 초록색 등으로 전환하려 했어요.
‘나를 키운 것은 음악과 바다였다.’ 이렇게 말했던 화가는 1930년대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니스에 머물렀습니다. 이곳에서도 음악 같은 미술은 계속되었지요. ‘니스의 열린 창문’은 이 시기 제작된 그림입니다. 무대 연출가이자 직물 디자이너였던 화가의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나는군요. 그림 속 실내의 무늬 있는 벽지와 러그 장식이 돋보입니다. 꽃병을 둔 탁자와 창가에 놓인 멋진 의자도 눈에 띕니다. 공간 내부를 비추는 옷장 거울과 바깥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커다란 창문 때문이겠지요. 그림 속 장소가 안과 밖으로 무한히 확장 가능한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쓴 ‘아파트 공화국’을 읽고 각자 자신이 진짜 살고 싶은 집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학생들에게 종이로 만든 주택 모형을 나눠주고 자유롭게 꾸며 보도록 했지요. 그런데 동갑내기 친구들이 자신만의 소망과 감각으로 빈집을 신나게 채우는 동안 무거운 안마의자와 커다란 온돌침대를 집안에 그려 넣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살 집이 아니라 부모님께 드릴 집이랍니다. 그 마음이 그림 속 누군가를 위한 빈자리, 무언가와 연결되는 창문 같아 참 기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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