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과 중학생 두 아들을 둔 주부 박모 씨(45)는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휴가철에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 여행을 떠나려면 두 아들의 방학 기간과 남편의 휴가 기간에 맞춰 움직여야 하지만 시간을 맞추기가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 씨는 지난해 여름에는 두 아이가 함께 쉬는 7월 말∼8월 초, 이른바 ‘7말 8초’에 여행을 가기로 했지만 남편이 휴가를 내지 못했다. 이 기간이 아이가 있는 직장인들이라면 대부분 선호하는 때였기 때문이다. 다른 직원들과 조정하면서 휴가 일정이 밀린 것이다. 결국 그는 여행을 취소하고 방학 내내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해야만 했다.
입시 준비를 하는 학생들에게도 방학을 이용한 여행은 그림의 떡이다. 고등학교 2학년 김모 군(17)은 “정식 여름 방학은 7월 말부터 8월 말까지 한 달 남짓이지만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하고 학원에서도 ‘방학 단기 특강’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학원이 방학하는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의 일주일이 가족여행을 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데 이 기간 여행지가 너무 붐벼서 지친 가족들이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특정 기간에 몰린 학생들의 방학이 국내 여행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려 하는 사람들이 같은 기간 비슷한 관광지에 몰리며 여행의 질도 떨어지고 있다. 유명 관광지에서는 넘쳐나는 인파로 휴식을 취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특정 기간에 휴가가 쏠리다 보니 성수기 바가지요금 문제가 발생하고, 국내 여행비용이 비싸다는 인식도 고착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짧은 기간에 급하게 일정을 맞춰 여행을 다녀와야 하다 보니 가족의 입장에서는 여행이 휴식이 아닌 또 하나의 숙제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올해 봄 여행주간(4월 29일∼5월 14일) 동안 초중고교 재량 휴업을 권장할 계획이다. 학교장 재량으로 징검다리 연휴 사이에 끼인 날을 휴일로 지정해 학생들의 휴식 기간을 늘리고 가족여행을 장려한다는 취지다. 전체 학교 중 93%가 이 정책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강정원 문체부 관광정책과장은 “학생들의 방학 때문에 국민의 여행 수요가 방학 기간에 몰리거나 가족 구성원끼리 여행을 포기하는 일을 막기 위해 학생들이 봄과 가을에 나눠 쉬도록 하는 방학 분산제나 자유학기제 등을 실시하는 방안을 도입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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