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손민지]경주 사람이 된다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2일 03시 00분


저녁 회식이라도 하는 날엔 종종 택시를 타게 된다. 오고 가는 적막이 어색해 택시 기사분들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 보면, 경주에 대한 속설들을 제법 많이 듣게 된다. 그중 하나는 나를 비롯해 타지에서 온 사람들의 적응에 꼭 필요한 말인 듯싶다. “3대가 살아야 경주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는 말이었다. 3대의 삶이란 어림잡아 100년이다. 100년을 잘 살아야 경주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자칫하면 배타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말에 대체 ‘경주는 어떤 도시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내가 처음 만난 경주는 천년 고도의 깊이만큼이나 잘 보존된 역사 문화 유적들이다. 그뿐 아니라 매년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는 경주 곳곳에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감상할 수 있다. 지난 몇 주간은 출퇴근 버스를 타고 아름다운 벚꽃길을 지났다. 도심의 지하철 속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여유가 있었다. 보통 만개 후 1주일이면 지는 타 지역의 벚꽃과 달리, 경주 벚꽃은 장소마다 피는 시기가 달라 적어도 20일은 벚꽃 감상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직장이 위치한 장항리에서 차로 20분쯤 달리면 감포 바닷가에 도착한다. 탁 트인 바다를 감상하며 싱싱한 자연산 물회와 전복, 회덮밥을 맛볼 수 있다. 점심 회식으로는 조금 과하다 싶지만 살얼음이 낀 시원한 물회 한입은 때 이른 더위를 잡는다.

또한 경주 천년한우는 어떠한가. 어딜 가든 심심찮게 보이는 구이용 한우 판매 음식점들은 경사 있는 직원들과 함께하기 위한 모임 장소로는 으뜸이다. 대릉원 주변의 쌈밥 역시 입맛을 돋우는 데 제격이다. 역사 깊은 명소들을 구경하면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는 낭만은 어느 지역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큰 특색이 아닐까 한다. 문화관광 도시 경주. 이곳에 적응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 할 필요성을 느낄 즈음, 지인들과 경주 토박이분들의 특징에 대한 담소를 나누게 되었다. 다소 직설적인 듯하지만 소박하고 솔직한 사람들의 감정 표현은 내가 만난 이들의 공통점이었다. 불현듯 오래된 관광지로 많은 사람이 들고 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경주 사람들의 뿌리 깊은 정서를 가늠할 수 있었다. 정을 주는 것도, 정을 떼는 것도 익숙해져야 하는 일이라면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속을 터놓고 할 말은 해야 하지 않을까. 만남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몸에 익힌 격식과 체면치레는 뒤로 접어두고 마음을 열어, 내 감정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수준이 되어야 경주 사람으로 조금은 거듭날 수 있을 듯하다.

―손민지

※필자(34)는 경기 부천에서 생활하다 지난해 경북 경주로 옮겨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경주#경주 속설#경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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