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봄 햇살과 꽃의 물결이 반긴 서울 종로구 낙원동 주변은 문화와 세대의 교차로였다. 방송진행자 송해의 이름을 딴 ‘송해길’, 어르신들의 홍대로 불리는 ‘락희거리’가 요즘 젊은이들의 인스타그램에 즐겨 등장하는 익선동 한옥마을 카페 거리와 만난다.
‘낙원삘딍’은 1969년 완공된 주상복합건물이다. 수리·보수만 했지 완공 당시 그대로라는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니 자갈 섞어 만든 독특한 건물 내벽이 눈에 들어온다. 지은 지 반세기 됐지만 건물안전진단에서 매년 B등급을 받을 정도로 안정적인 건물이다. 정보기술과 온라인 상거래의 성장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보이던 낙원상가가 최근 악기 강좌와 콘서트 등 콘텐츠 확충으로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판매에서 무료강습으로… “이젠 돌려드려야죠”
4층 중앙 옥상은 낙원상가의 젊음이 피어나는 곳이다. 푸른 인조잔디가 깔린 ‘멋진하늘 공연장’에선 29일 클래식 렉처 콘서트 ‘하루키, 미야자키 하야오를 만나다’를 비롯해 다음 달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 콘서트, 6월 고상지 트리오 공연 등이 열린다. 다음 달부턴 ‘비긴 어게인’ 등 음악영화를 해설, 공연과 함께 상영한다.
건물 2, 3층에 300여 개의 상점이 들어차 있다. ‘악기만 팔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상인들은 올 하반기부터 무료 악기 입문 강습 강사로 활동한다. 상점 ‘에클레시아’의 박주일 대표(51·상가번영회 사무국장)는 지난달부터 이곳 상가에서 우쿨렐레 만들기 무료 강좌를 시작했다. “전에는 하나라도 더 파는 데만 급급했는데 저도 철이 들었나 봐요. 24년간 ‘낙원’ 덕에 먹고살았으니 이제 재능기부로 토해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매달 1회 열리는 강습에는 미취학 아동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한다.
○ 안내 전광판, 팟캐스트 스튜디오…변하는 ‘낙원’
이곳은 더 이상 어르신들이 기타, 피아노, 색소폰만 사가는 곳이 아니다. 3층 ‘국제미디’ 매장은 요즘 TV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나 인터넷 방송 제작을 위한 전자악기를 찾는 10, 20대 1인 창작자들이 몰려든다. 같은 층의 ‘기타네트’ 매장은 밴드 ‘혁오’의 오혁이 들르는 곳으로 유명하다.
상가는 출입구가 8개나 되는 데다 공간이 넓어 초심자들은 방향을 잃기 일쑤였다. 곳곳에 안내 전광판 부스가 설치됐다. 2층엔 중앙 카페도 마련됐다.
지난해부터는 집안에 잠자는 중고악기를 기부하면 상가 상인들이 수리와 조율을 해 문화예술 소외지역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나눔캠페인도 하고 있다. 상가 활성화 아이디어 제시, 홍보 콘텐츠 제작을 돕는 ‘대학생 서포터스’도 5월 출범한다. 이달부터는 외부 전문강사가 참여하는 ‘반려악기 강습 이벤트’도 시작했다. 자녀 결혼식에서 축하 연주를 하기 원하는 50, 60대를 대상으로 한 일대일 악기 무료 강습이다. 강습은 4층 합주실에서 진행된다. 합주실 인근 녹음실은 요즘 유행인 팟캐스트나 유명 가수의 음반 녹음 장소로도 쓰이고 있다.
검은 피부에 미국 R&B 가수처럼 풍성한 곱슬머리를 한 필립 마자시 씨(23)를 만난 곳도 상가 2층 ‘베델악기’였다. 아프리카 말라위 출신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클래식 색소폰을 전공하는 그는 이곳을 자주 찾는다며 유창한 한국어로 말한다. “말라위에는 이런 악기상가가 없어요. 정말 크고 편리하게 돼 있어서 자주 와요.” 낙원악기상가는 여전히 세계 최대의 악기 상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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