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장소 근처 전시장에 잠시 들렀습니다. 장르와 세대, 미적 지향과 조형 언어가 각양각색인 미술가 14명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가 열리고 있더군요.
소란스러운 바깥세상과는 전혀 다른 고요함 때문이었을까요. 어두운 조명과 은은한 풍경이 빚어내는 각별한 분위기 때문이었을까요. 역동적 전시 동선을 따라 다채로운 미술가들의 면면을 확인하다 전시장 모퉁이에서 발길을 멈췄습니다. 좁은 입구를 제외한 벽면 전체를 두 폭 대작으로 채운 작은 공간이었지요.
석철주가 풍경으로 제안하는 차분한 유토피아가 그 안에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화가는 2005년쯤 도원 풍경에 미술의 닻을 내렸습니다. 장독대와 골무 같은 집 안팎 기물에서 출발해 화분과 대자연을 경유한 다음 일이었어요. 도원경 연작인 ‘신몽유도원도’는 조선시대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출발점입니다. 미술가는 세종대왕의 아들인 안평대군이 꿈에 노닐던 도원을 봄 계곡 풍경으로 구체화한 산수화를 동시대 매체로 재해석하고자 부단히 노력했지요. 선조가 그린 이상향에서 고단한 현재의 삶을 다독일 가능성의 통로를 발견했거든요.
예술적 변주를 쉬지 않고 거듭해온 화가가 전시에 출품한 푸른빛 이상향은, 시작점은 같지만 행선지는 다릅니다. 오른편 풍경은 목적지가 상상과 관념에 기댄 이상세계에 가깝습니다. 반면 왼편 풍경은 도착지가 관찰과 경험을 반영한 현실세계 인근입니다. 그럼에도 그림 속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는 상반된 세계는 별개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전시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분리된 채 연결되고 있었어요. 순환하는 꿈과 삶의 생성과 소멸을 형상화한 아버지의 작업에 작곡가인 딸이 붙인 곡이라지요.
이상세계와 현실세계 사이, 전시장에서 관객에게 허락된 공간이 뜻깊게 다가왔습니다. 그 공간이 우리들 삶의 마당같이 느껴졌거든요. 무언가를 내세우기보다 한 걸음 물러선 듯하고, 어떤 것을 더하기보다 필요 없는 것을 덜어낸 것 같은 미술과 음악이 전하는 감정은 모순적이었습니다. 편안한 긴장, 빽빽한 여유라고 할까요. 한없이 멀면서 또 가까운 풍경들 한가운데서 제 자신과 마주했습니다. 필사적으로 움켜쥐고 있던 꿈과 삶에서 비롯된 버거운 짐을 내려놓고 잠시 가쁜 숨도 가다듬어 보았습니다.
댓글 0